처음부터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개방적이고 느긋하고 성적 중립을 지키는 관대한 이단과

편협하고 독단적이고 가부장적이고 경직된 정통을 서로 대비시키는 일은

역사적으로 옹호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접근법은 오늘날의 문화에 맞춘 산뜻하고 매력적인 대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역사적 자료와는 양립할 수 없는 접근 방식이다.


- 앨리스터 맥그래스,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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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향상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나의 경력에는 향상도 퇴보도 없다.

행복한 경력과 행복하지 못한 경력이 있을 뿐이다.


고도 도키오, 『나쁜 습관 정리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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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읽고 있는 책 중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어 옮겨 본다.

폴 우드러프가 쓴 "최초의 민주주의"라는 책이다.



정치 지도자들에게서 다음의 징후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경계해야 하며, 우리의 자유에 치명상을 입힐 흑사병이 진행 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1. 참주가 정치적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하며, 이 두려움이 그의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2. 참주가 종종 말로만 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며, 실제 통치함에 있어서 자신을 법 위에 세우려 한다.

  3. 참주가 비판을 수용하지 못한다.

  4. 참주가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책임을 추궁받지 않으려 한다.

  5. 참주가 자신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는 자로부터는 어떤 조언이나 충고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비록 그가 자신의 친구라도 할지라도.

  6. 참주가 자신과 의견을 같이하지 않는 자가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응? 이거 2023년 대한민국의 그분을 가리키는 건가?

우린 민주정이 아니라 참주정 체제 아래서 살고 있었던 건가.

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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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바나나처럼 껍질은 버리고 과육만 얻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양파처럼 껍질과 과육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그 자체를 온전히 섭취해야 한다.

신화적 언어는 ‘외피’나 ‘껍데기’일지 몰라도,

그 신화적 언어가 주는 적절한 비유와 직관적 통찰이

무릎을 탁! 치게 만들 때도 많다.

예수님이 즐겨 사용했던 비유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고뇌와 일상의 성찰이 그 신화적 표상에 깃들어 있다.

그래서 불트만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학자들은

신화적 표현은 미신의 언어도 아니고,

벗겨 내어 폐기 처분할 대상은 더더욱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그 지적에 따르면 신화적 껍질을 벗겨 내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다.


- 주원준, 『구약성경과 신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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