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드레스 - 법과 삶의 기묘한 연금술
알비 삭스 지음, 김신 옮김 / 일월서각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1. 요약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초대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 한 명이었던 알비 삭스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 주요 사건과 헌법재판관으로 내렸던 결정 중 의미가 있는 것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악명 높은 인종차별 정책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적/경제적 약자들과 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한 남아공 헌법을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그의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다. 매 장(章)들마다 실제 결정문의 일부가 실려 있어서 생생함을 더한다.

 

 

 

2. 감상평 。。。。。。。   

 

     쉽게 읽히지는 않았던 책이다. 법조인으로 살아온 저자의 글은 한 문장, 한 단어마다 무게감이 있어서 대충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헌법 재판관으로서 심판해야 할 사안들이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것은 당연, 그 과정에서 자신의 국가의 헌법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저자의 고민을 옆에서 지켜보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책의 전반부는 주로 완고한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이 무너진 후 들어선 제대로 된 민주 정부에서 과거의 잘못을 어떤 식으로 정리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다. 과거정부는 그 자체로도 상당히 문제가 많은 법률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법적인 구금과 납치, 고문을 자행해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었고, 그보다 몇 배에 달하는 이들에게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그럼 이제 새 시대가 되었으니 과거의 인사들을 모조리 잡아다 숙청해야 할까?

 

     저자인 알비 삭스는 놀랍게도 진실화해위원회에 출석해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고 그 내용을 공개적으로 고백할 경우 사면을 해주는 방안을 지지한다. 이 태도가 더욱 놀라운 것은 알비 삭스 자신이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직접 그런 불법적인 구금과 고문을 당했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보낸 비밀 요원이 설치한 폭발물로 한 쪽 손과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어버린 당사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결정으로 자칫 영원히 묻혀버릴 수도 있는 사건의 진실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시인과 고백을 통해서만 사면을 받을 수 있도록 했기에, 당시 가해자들은 평생을 지고 갈 수 있는 양심의 짐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도 있게 될 것이라는 배려까지.. 어쨌든 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민이니까.

 

     어두운 과거사를 정리하는 꽤 현명한 조치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나라 역시 그 못지않은 독재정권들과 그들이 남긴 불법적인 악행들이 있지만, 공개적인 시인과 고백 없이 적당히 몇 년을 감옥에서 보내는 것으로 너무 쉽게 사면이 이루어져버렸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역사는 결국 애초 사면의 목표인 국민통합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바래게 만드는 요인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그가 내린 결정들 모두에 그와 같은 생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안에 담긴 그의 생각들은 깊은 공감을 하게 만든다. 형편없는 도덕의식에, 자기들이 가장 똑똑하고 잘 난 줄로만 아는 우리나라의 법조인들(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닐 게다)이 꼭 한 번은 읽어봤으면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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