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인 내용은 이런 주제들에 대해 전통적인 교회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달라진 상황에 맞게 변화의 가능성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저자가 언급한 주제들은 사실 ‘진리’ 자체보다는 그것을 담는 형식에 가까운 것들이니까. 상황이 달라진다면 내용을 담는 그릇도 바꿀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특히 저자는 예배가 지나치게 많다고 지적하는데, 이 부분은 평소 나 역시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주일예배 뿐 아니라, 수요일, 금요일에 모이는 집회도 예배라고 불리고, 새벽마다 또 ‘새벽예배’를 하기도 한다. 어떤 교회에는 동시에 저녁예배도 진행하고, 365일 쉬지 않고 계속 예배를 이어간다는 걸 메인으로 자랑하는 선교단체도 있는 것으로 안다. 어디 그뿐인가, 이사예배, 개업예배, 장례예배, 신학교에 다닐 때는 무슨 교수 출판감사예배, 은퇴감사예배, 등등 온갖 사사로운 예배도 넘쳐나는 걸 봤다. 그냥 ~~식/예식이라고 부르고 기념하며 감사하면 될 일을 굳이 ‘예배’자를 갖다 붙인다.
그러니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라는 말을, 수요예배 없애면 큰일 나는 이유쯤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나타나는 것이다.(얼마 전 내 유튜브 채널에 실제로 달린 댓글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배’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앞에서 나왔을 때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취해야 하는/취하게 되는 자기를 낮춤, 상대를 인정하고 경배하는 태도, 또는 상태에 관한 신학적 설명이다. 수요예배, 주일예배 할 때 붙이는 의식이름이 아니라.
이른바 새벽예배는 성경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새벽에 기도했다는 몇몇 구절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다 그걸 알아채지 못하다가 20세기 조선의 신자들만 알았다는 의미가 된다), 20세기 초반 조선의 농경사회의 시간 단위에 맞춘 의식이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의식이라도 우리의 신앙에 유익이 된다면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 다만 바뀐 상황으로 이제 사람을 갈아넣어야 유지되는 수준인데도 계속 고집한다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었다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했던 바리새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