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외할머니와 살겠다며 먼 나라로 떠나버렸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 말고는 이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어느 날 집 앞으로 죽은 아내의 이름으로 발송된 커다란 소포가 하나 도착했다.
놀랍게도 상자 안에는 주인공 수한과 똑같은 모습의 또 하나의 사람이 들어 있었다. 자신을 수한의 복제인간이라고 소개하는 그와 함께 온 쪽지에는 서툰 글씨로 “너도 너 같은 새끼랑 살아봐”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수한의 죽은 아내는 소설 속 가공의 나라인 리벨라우스 출신으로 우리말을 제대로 못 한다는 설정. 와우 이 소설 복제인간을 다루고 있었다.
소설은 나와 똑같은 모양의 복제인간과 함께 살아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하는 꽤 현실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 소설 속 시대는 가까운 미래로 보이는데, 복제인간을 만드는 행위는 불법으로 여겨지고, 적발될 경우 복제인간은 ‘폐기’된다. 주인공 수한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좀 더 복잡하다. 수한은 아들의 양육권을 장모와 다투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낮은 점수(이 시대에는 AI로 적합도 점수를 매긴다)를 가진 상황에 복제인간 같은 불법요소까지 알려지면 더욱 불리해 질 수 있었던 것.
결국 잠정적인 동거를 시작하는데, 수한의 모든 기억을 이식받은 복제인간은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대화를 이어나갔고, 어느새 수한 역시 경계의 줄을 살짝 놓기까지 한다. 아들과의 만남과 회사 일이 겹치자, 복제인간을 대신 회사에 보내기까지 한다(심지어 자신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잘 풀어나간다!).
복제인간이 나를 대신해 회사에 출근하고, 심지어 나보다 일처리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잘 풀어나간다면, 아마 우리 중 십중팔구는 이른바 복제인간으로 ‘자동사냥’을 돌리지 않을까? 그렇게 남은 시간을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하는 데 사용할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다만 이런 기대는 새로운 게 아니다. 다양한 기계장치들을 도입할 때도 인류는 모든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미래를 그렸다. 하지만 결과는 더 많은 일과 더 적은 휴식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아마 AI의 도입도 비슷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지금은 자동화니 뭐니 하면서 힘을 덜 들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모두가 그것을 사용하게 된다면, 이제는 기본적으로 습득해야 할 지식의 양과 종류가 늘어날 뿐, 일은 더 많이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