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모든 것 - 위기의 자본주의, 가치 논의로 다시 시작하는 경제학
마리아나 마추카토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20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책의 원제를 보고 살짝 갸우뚱했다원래 이 책의 제목은 “The Value of Everything”인데번역하면 모든 것의 가치일텐데출판사에선 주어와 수식어를 서로 바꿔서 가치의 모든 것이라고 만들어 놨다이 정도 출판사가 번역의 실수를 한 건 아니었을 테고무슨 이유였을까.


     책을 읽어 나가며 조금씩 나름의 이유를 찾았다원제인 모든 것의 가치는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싶어 하는 중심 소재인 ‘(경제학에서의가치’ 자체에 좀 더 중심을 두고 있다면번역한 제목인 가치의 모든 것은 그 가치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이론과 관행적 사고 등을 두루 가리키는 듯하다이렇게 보면 책 전체의 내용을 잘 설명하는 번역 제목일지도...



     책은 경제학에서의 가치이론을 다루고 있다이것이 중요한 이유는어떤 것에 진짜 가치가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그것에 제대로 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저자는 경제학의 간단한 역사를 반추하면서초기 경제학자들은 가치를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히 알 수 있는 것들로 보았으나현대에 와서는 단지 사람들의 선호가 가격과 가치를 결정한다는 이상한 교조주의가 나타났다고 본다.


     이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기준이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이제 누가 더 말을 잘 하느냐이름을 잘 갖다 붙이느냐가 중요해지게 된다말 몇 마디로 별 가치도 없는 것들이 대단히 중요해지게 되거나실제보다 그 가치가 훨씬 더 부풀려질 수도 있다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금융을 꼽는다.


     오늘날에는 경제 전반의 금융화가 이루어지면서각종 복잡한 금융기법이 마치 가치를 창조하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일으키고 있다애초에 부의 부드러운 이전과 중개 등을 담당할 뿐이었던 금융이이제 온갖 투기소요를 일으켜서 거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 과정에서 가치의 왜곡이 일어나고부가 소수의 투기세력에게 몰리게 된다.


     여기에서 저자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가치생산의 차원에서 정부의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되어왔다는 점이다오늘날 경제학에서는 시장에 대한 맹목적 신앙이 점점 강화되면서경제에 정부가 실제로 끼치는 영향을 무시하고 왜곡하게 되었다저자는 정부가 실제로 가치를 창조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도 유튜브와 공중파를 가리지 않고소위 금융전문가들이 출연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주요국의 주가가 어떻게 되는지를 스포츠 중계하듯 보고하는 일들이 넘쳐난다물론 증시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지표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하지만 오늘날 이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정말로 그 기업 가치를 반영하는 투자일까?(그렇게 매일처럼 기업가치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정상일까?) 이미 주식은 상당 수준 실제 가치와는 상관없는 투기판으로 변한지 오래다그들만의 온갖 논리와 원칙을 갖다 붙이지만말잔치를 걷어내고 나면결국 사람들의 기대감을 두고 벌이는 도박처럼 보인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주가를 부양하는 것이 경제당국의 유일한 지상목표인 양 목소리를 높이는 전문가들이 많이 보인다물론 이들은 거기에 자신들의 밥줄이 달려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건 인정한다그런데 이 말은 이들이 결코 중립적인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그들도 이해당사자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말이다갈수록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도박의 판을 키우는 것 이상의 특별한 효과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또 하나 실물경제의 금융화가 문제인 것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생각과 다르게이들이 가치 자체를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금융 분야의 발달이 자본조달을 용이하게 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불러왔던복잡한 파생상품 같은 사기성 상품들을 말장난으로 만들어 낸 것도 분명 사실이다애초부터 말과 계산으로 분명히 존재하는 리스크를 줄일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세계적 추세는 물론우리나라의 상황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것 같다인터넷 은행 분야부터 시작해 금산분리 원칙은 점점 무너져 내리는 것 같고금융에 관한 규제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사기의 영역도 함께 넓어지고 있다물론 불필요한 규제야 정비되어야겠지만모든 규제가 악이라는 식의시장만능론은 입증된 적이 없는 상상과 믿음의 산물일 뿐이다.



     경제 영역에서정부의 역할에 대한 재발견도 중요한 부분이다단지 규제나 지원제도를 통해서만이 아니라정부는 실제로도 가치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오늘날 민간에서 널리 사용되는 다양한 기술들은(예컨대, GPS나 인터넷 같은애초에 정부 주도로 개발이 이루어진 것들이었고막대한 세금이 투입되어 만들어낸 기술이 어느 정도 전망을 보인 후에야 민간 기업들이 뛰어들어 그 열매를 독차지했다는 저자의 지적은 곱씹어 볼만한 부분이다.


     정부의 경제에서의 역할은 부실한 기업을 떠맡는 식의 패시브 스킬만 발휘하는 것이라는 편견어린 시선은 분명 잘못되었다사실 많은 정부가 이런 시각에 살짝 주눅 들어 있는 것 같다세금을 투입해서 만든 기술은 어느 정도 그 세금을 낸 국민들에게 이익으로 돌아가야만 한다소수의 기업가들이실제로 가치창출에 그 정도의 기여를 했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지나치게 많은 열매를 독점하도록 두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좋은 경제기여한 만큼의 보답을 받을 수 있는 경제일 것이다죽을 만큼 힘들게 애쓰는 데도 먹고사는 것이 힘든 상황이라면 어딘가 고장이 난 것이다이 책의 저자는 이런 상황이 가치의 기준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상당히 흥미로운 지적이고오늘 우리들의 경제구조는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게 만드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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