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영화인 줄 알았다던(이 말은 상징법 아니라 직설법이었다) 손석희 사장의 말을 듣고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지 않고 예매를 한지라, 나도 비슷한 생각은 갖고 앉았으니까. 영화가 시작하고 좀 지나서야 비로소 이 영화 속 기생충이 사람의 몸속에서 영양분을 빨아먹고 사는 작은 생물체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데, 그 순간 제목에 관한 감독의 씁쓸한 조크에 피식하게 된다.

     영화 초반은 계속 이런 식의 블랙유머가 오고간다. 분명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에서도 기택(송강호) 가족의 어이없을 정도의 평온하며 자신감 있는 모습도, 그들이 하나둘 동익(이선균)과 연교(조여정)의 집으로 기어들어가는 모습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유머러스함이 느껴지는데, 어느새 이야기는 두 가족의 확연한 빈부의 격차, 사는 방식의 차이, 나아가 사고의 다른 결을 보여주는 것으로 넘어간다. 유머와 메시지, 그리고 (결말부에 등장하지만) 격정적인 감정의 분출까지, 외국인들의 눈에도 확실히 작품이구나 싶게 할 만한 요소들이 잘 버무려져 있다.

 

     먼지 하나 없을 것 같은 동익과 연교 부부의 집과 큰 비가 오면 금세 물바다가 되어버리는 기택 가족의 반지하집은 시각적으로도 엄청난 대조를 보인다. 하지만 더 큰 대조는 두 가족의 생각에 묻어있다. 분명 사기를 치는 중에서도 뻔뻔함을 넘어 떳떳한 기우(최우식)와 기정(박소담)의 달변 앞에서 말문이 막히는데, 반대편의 동익과 연교는 또 얼마나 품위가 있는지’.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냈을까.

     결국 돈이 아니었나 싶다. 돈은 가난한 사람들의 도덕적 감각을 무뎌지게 만들었고, 부유한 사람들의 공감능력을 앗아갔다. 그런데 이게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모습을 가져온다는 게 아이러니다. ‘선을 넘어오지 말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동익의 모습에는 어떤 인간다움, 혹은 인정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자신들의 사기를 감추기 위해 극단적인 일까지 저지르고도 은폐하기에만 급급한 기택의 모습에서도 크게 다른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그들 역시 자신들보다 열악한 상황에 몰린 이들을 저 아래에 두고 선을 그으려 하고 있으니까. 돈의 가치를 최상위에 둔 이상, 그것이 많거나 적거나 문제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 다양한 포인트들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놀이가 인기다. 감독이 그 모든 것을 다 염두하고 세밀하게 만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심으로는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을 듯. 여튼 상업영화에 이렇게 많은 말이 나오는 건 흥행에 확실히 도움이 되긴 할 테니까. 개인적으로는 동익 부부의 둘째 다송이 그렸다는 자화상속 주인공이 내가 생각하는그 사람인지 살짝 궁금하긴 하다.

     오늘 일자로 영화가 7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끌어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그렇게 대중적일까 하는 생각은 살짝 든다. 일단 영화 전체의 분위기가 좀 그로테스크한데다가, 후반부의 충돌도 좀 불편하게 볼 만한 소지가 잔뜩 있으니까.(약간은 뜬금없는 폭력의 수위도 그렇고, 과연 그게 논리적인 결과인가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기택의 집에서 볼 수 있는) 일정 수준 이하의 가난은 보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 마련인지라.

 

     영화의 예술적인 측면에서 평가하는 건 내 몫은 아닌 듯하고,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다른 사람에게도 보라고, 좋다고 권하고 싶은 생각까진 들지 않는다. 어떤 칼럼니스트가 차라리 상을 받아 않았더라면 좀 더 작품에 대한 비판적 분석도 가능해졌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살짝 표하던데 백번 공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