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 - 마스다 미리 에세이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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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의 신작 에세이 『작은 나』를 받아들고는 작은 나는 어디에 있을까를 고민했다. 최애의 색 노란색과 쥐기 좋은 감촉의 책 『작은 나』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작은 나들이 쓴 일기장 같은 책이다. 그 시절 그 시간을 살아간 우리들은 큰 나가 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작은 나의 기억은 소중하다. 사계절에 맞춰 쓰인 작은 나 시절의 마스다 미리의 기억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추억 속으로 데려간다. 


초등학교 입학식 전날에 내 가방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크진 않을지 걱정하고 모르는 어른에게 집안의 화장실을 빌려주는 건 삼가야 한다는 것 피아노 학원에서 건반을 치기 전에 높은 음자리표와 낮은 음자리표를 반복해서 그렸던 것 잘 가라는 말이 담긴 노래는 딸과 헤어지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 아빠는 싫어한다는 것. 『작은 나』의 이야기는 열쇠가 달린 일기장을 봉인 해제해 준 느낌이다. 


지금의 나는 일기를 쓴다. 일지 같은 일기를. 내용증명이나 알리바이 느낌으로다가 쓴다. 파워 무계획형인 내가 일기를 쓴다는 게 나조차도 놀랍지만 꾸준히 쓰고 있다. 『작은 나』의 순수함이나 발랄함은 없다. 큰 나는 그날 있었던 억울한 일이나 화나고 열받은 일(같은 의미네 화가 나고 열받는 건)을 쓴다. 대나무숲. 바람이 불면 솨아솨아 큰 나인 누구누구는 개빡쳤대 소리가 들린다.


마음이 어지럽다. 걱정도 불안도 사라지지 않는다. 애플티비 시리즈 《단절》에 나오는 것처럼 일과 생활이 분리될 수 있게 시술을 받을 수 있다면 하고 상상도 해본다. 괜찮고 멀쩡한 척 집에 와서 유튜브를 틀어 놓고 핸드폰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낮에 있었던 일이 무한 재생된다. 작은 나 시절에도 일기를 썼다. 꿈을 잃지 말자, 꿈을 향해 달려가자, 꿈을 꾸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 같은 오직 꿈에 미친 자아를 늘어놓곤 했는데 지금은 기절하듯 잘 때 꾸는 꿈만이 소중하다. 


『작은 나』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책에 나온 문장처럼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문장은 없다. 그 시절에 내가 썼을 것 같은 단문과 감상이 있을 뿐이다. 친구와 놀다가 싸우고 화해하고 엄마의 말에 수긍하고 어른에게는 착하게 군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일이 아닌가. 순수해져야 한다가 아니다. 착하고 어린 내가 있었다. 지금의 나를 살아가게 하는. 작은 나를 잊지 말기를. 손을 잡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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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
다카세 준코 지음, 허하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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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일하면서 좋은 점은(다들 월요병 치료의 일환으로 일하는 곳의 좋은 점을 떠올려 보시라. 아, 없겠죠. 물론 없겠죠.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점심을 같이 먹지 않아도 되었다는 서사이다. 처음에는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쳐서 이런저런 이야기(정말 쓸모없는)를 하면서 먹다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 자리에서 먹게 되었다. 정말 정말 무지무지 좋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화제를 쥐어 짜내면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었는데 모니터를 보면서 먹는다는 건 최고의 고독이다. 


간혹 같이 밥을 먹게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서랍에 넣어둔 소화제를 먹는다. 167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품 다카세 준코의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의 표지에는 그야말로 주옥같은 요즘의 나의 머릿속을 사찰한 듯한 문장인 '회사에서 일로 만난 사이에 꼭 같이 밥을 먹어야 하나요?'가 박혀 있다. 순간 감동받아서 사진을 찍고 카폭 프로필 배경으로 바꿨다.(법으로 지정하면 안 될까요? 점심시간에는 각자 밥을 먹는 걸로) 생각해 보니 그동안 어떻게 같이 밥을 먹었던 걸까. 혼자 먹는 점심은 일하는 순간의 구원 같다.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의 첫 장면은 사무실에 남은 니타니와 후지 씨의 점심 풍경이다. 지점장의 호령 비슷한 구령으로 사람들은 같이 밥을 먹으러 갔고 둘은 컵라면과 도시락을 각자 자리에서 먹는다. 얼마나 바람직한 광경인지. 이 책을 추천해 준 이에게 경배를.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의 장면들은 어머 이건 내 얘기야 하면서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체력이 약하다고 모두가 철야 작업을 하는데도 정시 퇴근을 하는 이가 있다. 사람들은 대놓고 그이를 미워하지 않는다. 미워하는 티를 냈다가는 오히려 인류애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몸이 아픈데 그 정도는 참아야지 여기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냐고 마음의 소리를 내뱉고 일을 하라고 한다면 오히려 그 말을 한 사람이 전근을 가게 된다. 매번 정시 퇴근을 하는 이는 다음날 구운 과자나 디저트를 가지고 오후 세시의 간식 타임을 연다. 


책의 나온 에피소드를 읽는 내내 소름 돋았다. 지금의 여기, 이곳의 상황과 똑같지 않은가. 출근하자마자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어제 한숨도 못 잤다, 엎드려 있어도 되냐고 한다. 교묘하게도 상황을 연출한다. 그걸 보고서 어찌 안됩니다 할 수 있나 그냥 조퇴하시라고 한다. 어김없이 다음날 무언갈 가져온다. (심지어는 자기 컨디션이 안 좋으니 오늘 예민하게 굴 수도 있다고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 뭐지 했다가 집에 가면서 기분이 나빴다.)


작품에는 세 인물이 나온다. 혼자 살면서 먹는 것에 욕심도 의지도 없는 남자 니타니. 부모님과 살면서 먹는 것에 진심인 여자 아시카와. 누구랑 사는지 나오지는 않지만 일만은 최선을 다하는 여자 오시오. 세 남녀의 엇갈리면서도 기이한 직장 스릴러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의 장점은 탁월한 상황과 심리 묘사에 있다. 가끔 아니 자주 의문한다. 내가 예민한가. 그래서 내가 문제인가. 이곳에서 느끼는 감정은 내가 못나고 한심해서 인가.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은 그렇지 않다고 다독인다. 어딜 가든 일보다는 처세로 버티고 미움받을 걸 알면서도 미운 짓을 하면서 자신을 미워하면 너의 인간성의 문제라고 암시를 주는 인간이 수두룩하다고 말해준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에 매번 관대하고 너그러운 인간과 함께 일하는 건 최악이다. 그리하여 함께 밥을 먹지 않을 수 있어서 기뻐 미치겠다. 책의 마지막은 서글프고 기괴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일하는 곳에서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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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라디오 체조 닥터 이라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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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러셨는지. 설 연휴 마지막 날 저녁에 마음이 굳고 심장이 두근거렸는지. 내일과 업무라는 말을 떠올리는 순간 습습후후 하셨는지.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은 국가가 나서서 일주일로 공휴일을 지정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괜히 속상해 하진 않았는지.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을 해야 괜찮을 것 같아서 괜찮은 척을 해보는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넷플과 디플과 티빙과 웨이브를 왔다 갔다 하다가 고른 책은 오쿠다 히데오의 『라디오 체조』였다.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무표정 간호사 마유미가 17년 만에 귀환했다는 책 표지 문구에 추가된 문장은 '초긴장 사회의 절대 인재, 닥터 이라부의 맞말 대잔치' 이다. 순간 잘못 읽어서 막말 대잔치라니 하면서 감명받아 이건 사야 해라면서 구매 완. 책을 사서 보니 막말이 아닌 '맞말'이었다. 또 감명받았다. 기가 막히게 말을 만들어 내는구나. 의사 이라부는 막 말하지만 잘 들으면 맞는 말만 하니까. 


괴짜 의사와 간호사가 주인공인 『라디오 체조』를 읽으며 긴장을 조금은 늦출 수 있었다. 왜 나의 마음이 아플까를 『라디오 체조』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통해 자가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열심과 노력과 최선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초조함과 긴장은 기본값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스트레스를 귀신처럼 어깨에 매달고 (그 괴담 아시는지. 어린아이가 어느 날 아빠를 보더니 아빠, 아빠는 왜 맨날 죽은 엄마를 업고 다녀 하던) 돌아다닌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라부 시리즈를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했단다. 그러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현대인들이 가지는 불안과 고달픔을 소설 속 인물을 통해서나마 달래주고 싶어 다시 이라부 시리즈를 완성했다. 『라디오 체조』는 읽는 내내 황당하고 웃겨서 피곤이 풀리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이라부는 시청률 강박증, 광장 공포증, 사회 불안장애 등을 호소하는 환자 앞에서 킹 받는 말만 해준다. 


어째 환자들은 그런 말을 듣고도 화가 나지 않는다. 다정하고 누구에게라도 권위 의식을 드러내지 않는 그 앞에서 묘한 안도감과 평화를 느끼고야 마는 것이다. 심각해하지 않으며 환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비타민 주사를 처방하고 주사 맞는 걸 지켜본다. 약 처방은 하지 않고 환자가 원한다면 왕진료를 두둑이 받고 집에까지 찾아간다. 


두 번 세 번 읽게 만드는 문장은 없다, 『라디오 체조』에는. 그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의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자조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불안과 걱정이 많아 일어나지 않을 일에 쓸데없이 힘을 쓰고 있다는 것. 의사 이라부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가와이 씨, 이제 급한 일 없지? 자, 모처럼 왔으니 커피라도 마시고 가. 어-이, 마유미 짱. 커피 두 잔 부탁해. " 또는 "뭐, 일단은 병원에 좀 다녀봐. 잘 듣는 주사를 놔줄 테니까." 혹은 "단순한 긴장이야. 자율신경 부전이지." 같은 딱딱해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말.


괜찮고 다 괜찮을 것. 걱정할 시간에 어제 보다 만 넷플릭스 시리즈 《아이 엠 낫 오케이》를 이어 볼 것. 두둥. 현대인의 심신이 안정되는 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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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밤 - 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
은유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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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언제 책을 읽으시나요. 하루 중 어떤 시간에 책 읽을 시간을 내어주시는지요. 아니 하루가 짧은 이들에게는 질문을 다르게 해볼게요. 어떤 날들에 책을 읽으시나요. 근로 생활자라면 주중에 있을 휴일에 그냥 생활자라면 하루에 자신이 정해진 시간에 책을 읽고 계시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하루를 마친 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서 잠깐, 휴일에는 오전의 시간에 책을 읽습니다. 추석이나 설 연휴가 있을 때에는 의무적으로 하루에 한 권 읽기를 하려고 합니다.


빛의 세기에 따라 읽는 책의 종류도 달리하는 나름의 부지런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밤과 새벽에는 불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전자책을 오전에는 빛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종이책을 읽습니다. 병렬 독서라는 걸 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게 별다른 취미도 에너지와 활기도 없는 저는 독서 생활이 정신과 체력에 맞습니다. 책 읽을 기운이 없을 때는 독서 브이로그를 틀어 놓습니다. 다른 이의 독서 경험이 저에게 흡수되길 바라면서요. 


책을 읽는다는 건 은근히 힘이 들고 어려운 행위라는 걸 얼마 전부터 깨닫고 있습니다. 습관처럼 읽던 책을 이제는 힘을 내고 노력을 해야 읽을 수 있다는 걸 고된 노동이 알려주었습니다. 너무 애쓰지 말자라고 나 자신에게 말해도 매번 애를 쓰고 부단한 노력으로만 살아온 내가 쉽게 들을 리 없지요. 번아웃이라는 거창한 말을 하기에도 민망하지만 어느 정도 나는 소진되었습니다. 주제가 있는 대화가 아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웃는 유튜브 영상을 틀어 놓고 멍하니 보는 것으로 힘을 내었습니다. 


일을 하다 화가 난 끝에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주문한 책 은유의 『해방의 밤』이 책상 위에 있었습니다. 책이 내 곁에 있다는 게 나를 기다려 주고 있다는 게 작은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새벽에 눈을 떴고 다시 잠들기엔 부담이 되었습니다. 이대로 자버리면 알람을 듣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고 책을 읽다가 다시 잠드는 시간들이 얼마 동안 있었으면. 이건 제가 결심하고 만들어갈 몫이겠지요. 


해방의 새벽이 되길 바라며 『해방의 밤』을 읽는 새벽은 참으로 찬란했습니다. 책의 모든 문장들이 나에게 달려와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의 고독, 나의 불안, 나의 망설임, 나의 한심함, 나의 분노를 『해방의 밤』은 달래주었습니다. 우리를 말하지만 우리 안에 가장 소중하고 불완전한 건 나이므로 나를 지키며 방어하는 시간을 살도록 『해방의 밤』은 일러줍니다. 쉽고 다정하고 누구라도 이해 가능한 언어로 말이지요. 작가 은유가 읽은 책과 본 영화 이야기는 너의 아침이니 계속 가도 된다고 아침이 두렵지 않도록 만들어 줍니다. 


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책 리뷰를 즐겨 읽습니다. 그러다 좌절하곤 하지요. 어렵다는 것 때문에요. 책 소개 글이지만 쓰는 이의 생활감이 묻어 있는 글에 애착이 더 갑니다. 『해방의 밤』은 딱 그런 책입니다. 수신인을 나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편지 형식의 글은 애틋하고 살가운 마음을 듬뿍 받을 수 있지요. 글쓰기 모임에서 학교 강연에서 만난 이에게 혹은 지인에게 보내는 『해방의 밤』 속 책 이야기는 온통 나에게만 말해주는 듯한 착각에 빠져 그가 소개한 책을 서점 장바구니에 가득 담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귀를 기울이며 목소리를 내는 것까지 나아가게 하는 건 책을 읽는 행위로서 가능해집니다.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건 잘못임을 말할 수 있도록  『해방의 밤』이 지도서가 되길 바랍니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될 거라는 비관 대신 해보고 안 되네 그럼 다시 해야지 무심한 낙관으로 다들 지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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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하품은 맛있다
강지영 지음 / 네오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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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연애 로맨스 이야기를 읽거나 본 적이 언제였던가. 본 방송 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앞을 사수했던 적은 현빈, 하지원 주연의 《시크릿 가든》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김주원이 입은 반짝이는 운동복과 길라임의 산뜻한 단발머리에 마음을 빼앗겨 토요일과 일요일 밤을 보냈다. 영혼이 뒤바뀌면서 벌이는 로맨스 활극이라니. 스턴트맨이라는 여주의 직업도 멋있었지. 클리셰로 범벅이었지만 (갇힌 공간에서 벽에 밀치기 같은) 그 또한 그때는 마냥 마음이 두근 반 세근 반이었지. 


이후로 몸은 그대로인데 영혼이 바뀌는 설정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노인이 어려지기도 하고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서 미래를 바꾸기도 하는. 영혼 체인지, 타임 슬립 장르는 시가 이후와 이전으로 갈리지 않을까라는 이상 방구석 텔레비전 키즈의 논설이었습니다. 아무튼 시가를 보면서 달달한 연애 이야기의 항마력을 모조리 끌어다 썼는지 로맨스물에는 눈도 주지 않고 있다. 오직 장르물. 사건이 일어나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데 주인공들이 눈이라도 마주치는 장면이 나온다? 과감히 다른 장르물로 넘어간다. 제발 사건에만 집중하라고. 


강지영의 장편 소설 『하품은 맛있다』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다. 미리 보기로 읽은 첫 페이지에 감화되어서. 배경 묘사로 질질 끄는 거 없이 바로 사건 현장으로 무기력한 ISFP를 데리고 간다.(연휴 동안 집에서 나가지 않고 있는 나를) 원룸에 특수청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고인을 위해 묵념을 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고독사, 자살사, 사고사든 죽음은 도처에 널려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사람이 죽은 이후를 담지 않는다. 벽지와 바닥에 튄 피는 어떻게 제거하나.


학자금 대출 삼천이 나 잡아봐라 놀리는 모양으로 따라다니는 박이경이 『하품은 맛있다』의 주인공이다. 작은 키에 못생긴 얼굴을 가졌다고 스스로 말하는 이경. 면접은 번번이 실패고 그나마 일당이 센 특수청소 일로 생계를 꾸려 가고 있다. 아빠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 중이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간호하고 있다. 돈이 모인다 싶으면 아빠 병원비와 생활비로 쓰인다.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좌절감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원룸 특수 청소를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이경은 잠에 빠진다. 눈을 떴을 때 이경은 다른 몸에 들어가 있다. 현실의 이경과는 전혀 다른 몸이었다. 사는 곳도 마찬가지이다. 아름다운 몸에 아름다운 엄마가 있는 곳에서 이경의 의식은 눈을 뜬다. 명문대 성악과에 재학 중인 다운이라는 여성의 몸에서 이경은 놀라운 일들을 경험한다. 꿈을 통해 타인의 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시간에 갇힌채 일어나는 사건들 앞에서 이경은 선택이 아닌 강요에 의해 앞으로 나아간다. 


꿈으로 타인의 몸과 의식을 지배한다는 설정의 『하품은 맛있다』의 결말은 지독하리만치 기괴하다. 인간은 선과 악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명제를 결말을 통해 보여준다. 겉으로 보면 인과응보의 교훈적인 주제로 끝을 맺는 것 같지만 나쁜 놈들 대신 내가 나쁜 놈이 되어 죽지 않고 살아가리라는 특이한 형태로 소설의 문을 닫는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이 벌이는 이판사판 공사판의 끝까지 간다의 설정은 알고 보니 회장님 아들 혹은 첫사랑의 그 애라는 뻔하고 지루한 설정보다는 봐줄 만하다는 게 게으름뱅이 집순이의 주장이다. 제발 회사에서 그러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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