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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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의 『단순한 진심』에는 원래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주인공이 나온다. 철로 주변에서 발견된 그녀는 세 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기관사가 기차를 멈추었고 그녀를 데려왔다. 문주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일 년을 함께 살았다. 문주는 다시 박에스더로 최종적으로 나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시원을 알지 못한 채 새로운 생명을 몸에 품은 문주는 박에스더는 나나는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온다. 자신이 왜 기찻길에 버려졌는지 기관사가 붙인 이름인 문주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외국으로 입양돼 낯선 곳에서 끊임없이 적응하고 불안해하며 살아야 했던 그녀였다. 나라는 아이가 대체 어떤 이유에서 태어났으며 버려지게 되었는지 의문으로 가득 찬 삶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의 제안으로 한국에 와서 문주의 의미를 찾고자 긴 여행을 시작한다. 자신의 아이에게 우주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나나. 조해진의 문장은 적절한 비유로 마음을 흔들곤 한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여러 곳을 떠돌아야 했던 인물을 통해 이곳의 나는 진짜인지를 묻는다.

문주는 한국에서 만난 모든 이들에게 이름의 의미를 묻는다. 존재의 이유와 의미를 찾고자 위함이다. 버려짐의 기억을 안고 살아야 했던 그녀에게 기댈 수 있는 건 타인이 가진 이름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이었다. 모두 존재의 이유가 있었다. 그녀 자신만 이유가 없는 채로 살아온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삶을 긍정하기가 힘들었다. 한국에서 문주는 문주를 찾을 수 있을까. 『단순한 진심』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기록이기도 하다. 문주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달라지면서 여행은 시작되었다.

여러 인물의 서사가 겹치면서 『단순한 진심』은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소설이 된다. 문주가 한국에서 만난 사람과 사연은 죽음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만든다.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끝이라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암흑이라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만큼이나 죽음의 의미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비관이 강했다.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부질없다는 생각이었다. 『단순한 진심』에서 말하는 죽음은 다르다. 그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출발하기 위한 기억의 단계를 거쳤다가 망각으로 접어드는 일이다.

태어남을 저주한 적도 있다. 쓰레기 같은 세상이라고. 이 더러운 세상에 왜 나를 있게 만들었냐고. 『단순한 진심』의 문주 역시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 원망할 상대가 없는 분노였다. 문주 이전의 삶을 추측하고 이해하는 노력으로 그녀는 나나가 된다. 나나이기를 거부했지만 나나가 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기는 삶으로 살아간다. 『단순한 진심』은 세계를 받아들이는 마음은 의외로 단순하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복잡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닌 달의 뒷면 따위는 궁금해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 어차피 볼 수도 없으니 말이다.

죽는 순간엔 외롭겠지. 무섭겠지. 누가 나를 기억해줄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오늘을 살고 내일이 오면 환호하는 단순함으로 먼저 떠나간 그이들을 기억해 보는 것으로 삶의 유예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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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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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5주기에 나온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를 사 놓고 바로 읽지 못했다. 또 한 번의 봄이 왔는데도 곁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없었다. 어떤 이의 시간은 그날로 멈추어 있었고 그럼에도 꾸준한 시간에 밀려 일상을 살아내야 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데 그 살아야 함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다시 촛불이다. 시간과 거리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그곳에 가지 못하는 사정을. 멀리서 응원하고 온기를 불어 넣어준다. 함께 있지는 못하지만 이 마음은 그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불이 꺼진 자리에 촛불이 하나 둘 켜졌고 시위대의 맨 앞에 노란 옷을 입은 그들이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생존 가족의 육성 기록을 담은 책이다. 5년여의 시간이 담겨 있다. 예쁜 옷을 차려 입고 기대에 들뜬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전원 구조라는 말로 안심 시키더니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거짓과 왜곡이 있었다. 대대적인 수색. 몇 백이 넘는 잠수사들의 투입이라는 말로 우리를 속였다. 현장에 있던 가족들이 어렵게 배를 빌려 바다로 갔지만 어둠뿐이었다. 절망과 분노, 통곡이 흘러나왔다.

아이가 떠난 방에 새 가구를 사서 들여놓았다는 엄마. 아이가 한 번이라도 다녀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형편이 안돼 외식 한 번 못하다가 4000원짜리 해장국을 먹으며 좋아했다는 아이. 그게 미안한 아빠. 광화문에서 전경과 싸우다가 아들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전경을 만났다는 엄마.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다쳐요, 다쳐요 했다면서 우는 엄마. 시위하는 사람들 보면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지금은 자신이 그걸 하고 있다면서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몰랐을 세상이라고 말하는 아빠.

이제는 돈 불리고 집 사는 일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래를 기약하는 것보다 오늘 하루 즐겁게 사는 것이 미래라고 말하며 엄마를 위로하는 형제자매. 아이가 물에서 올라왔는데 차마 그 아이 언니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고 했다. 살아야 하니까 먹어야 하는데 먹는 것 자체가 죄처럼 느껴졌다. 광화문에서 시위하고 있다가 웃고 있으면 자식 죽었는데 웃고 있다고 웃음이 나오냐는 말을 듣고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해서 처음에는 놀랐는데 이제는 되받아 칠 수 있다고 한다.

책에는 희생자 가족뿐만 아니라 생존 가족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살아 돌아온 아이들은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어한다. 잘못된 선택을 하려고도 했고 생명안전공원 건립 반대 현수막을 보지 못해 길을 돌아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유가족이나 생존 가족이나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생존 가족은 분명히 피해자인데 그 위치가 어정쩡해서 유가족들한테 다가가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가족분들이 오히려 먼저 오셔서 우리 아이 안부를 물어요. "애는 어때요, 잘 있어요?" "네, 잘 있어요. 아직은 힘들어해요." 그러면 제 손을 잡고 잘 살아야 한다고 얘기해주고. 그런 온기를 받아요. 추운 곳에 있지만 서로 부둥켜안고 있으면 체온이 유지되는 것처럼.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는 「고통의 단어 사전」으로 시작한다. 자음에 맞추어 ㄱ부터 시작되는 단어의 이야기는 읽기가 힘들었다. 이런 단어 사전이 나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었다. 한마디를 해달라고 했다. 아빠는 욕 안 먹는 아빠가 되도록 열심히 살 테니 아빠 꿈에 자주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한마디를 끝냈다. 아빠, 엄마를 찾아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록했을 작가들의 심정도 이러했겠지. 글로 읽는 나도 이렇게 슬프고 참담한데. 그들이야 오죽했을까. 어떻게 말로 기록으로 전할 수 있을까. 부모들이 살아온 세월을.

세월호의 장소를 찾아가는 2장 「세월호의 지도」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참사가 일어나고 가족들이 가야 했을 고통의 장소의 기억이 있다. 엄기호는 이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닫는다. '빛에서 어둠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라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가 그랬던 것처럼 한 개인이 겪어야 할 비극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국가와 사회에 의해 벌어진 참사로써 바라보며 동시대인으로 살아야 한다. 4월 16일이라는 시간 이후의 우리의 삶은.

어둠이 내리면 창문에 불이 들어온다. 아직 불을 켜지 못한 창문 앞으로 다가간다. 가만히 문을 두드린다. 여기 당신의 오늘을 궁금해하는 이가 있음을 알리려고. 함께 울어 주고 함께 웃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있다. 당신들의 고통이 아닌 우리들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겠다. 진실을 찾아가는 그 길에 함께 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동시대인들이 아니었던가.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는 정의와 평등, 진실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엄마, 아빠가 우리 곁에 있다. 어둠이 내리면 창문에 불을 켜는 건 우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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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음식 산문집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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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산촌편>을 틀어 놓고 멍하니 보곤 한다. 텔레비전 속 그들이 어떤 음식을 해 먹나. 오늘은 또 어떤 음식을 손이 큰 그들이 많이 하려나. 일종의 대리 만족. 우리 집에는 가마솥도 없고 음식을 휘저을 큰 국자도 없으니. 매번 그들이 푸짐하게 하는 음식을 보며 기뻐하는 것이다. 양 조절을 못해서 며칠 동안 김치찌개만을 먹어야 했던 적도 있어서. 그들이나 나나 다르지 않다는 확인을 받는다.

늦은 밤에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에는 먹방을 보곤 한다. 몇 명의 유튜버들을 정해 놓고 오늘은 어떤 걸 먹었나. 올라온 방송을 보며. 양의 많음에. 그걸 또 다 먹는 위대함에. 놀라며 빈 뱃속을 달래며 잠이 든다. 유튜브 방송의 특성상 내가 보는 방송이 있으면 그것과 비슷한 채널이 추천으로 뜬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듯한 브이로그도 보고. 시골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정겨운 방송도 보고. 먹지 않아서 남는 시간에 먹는 방송을 보니. 시간은 안 갈 듯하면서도 잘도 간다.

권여선의 음식 산문집 『오늘 뭐 먹지?』는 활자로써 오감을 자극한다. 그중에 눈으로 읽고 상상하며 결국엔 침샘을 자극하는 음식이 여러 종류가 있었다. 맛깔스러운 음식의 묘사와 음식에 담긴 추억까지. 먹지 않아도 배부른 건 아니지만 먹지 않아도 괜찮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막내딸로 태어나서 간을 보는 절대 미각을 가진 간순이의 일화부터 육식, 특히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가 술김에 순대를 먹기까지. 좋아하는 소설가의 음식 추억담과 생활의 모습까지 읽으며 행복했다. 그가 겪었던 시간에 나의 과거를 겹쳐 보는 것이다.

음식에 관한한 준비성이 철저하다는 그의 자랑까지. 읽고 있으면 우리를 따뜻한 만두가 놓이고 김밥이 있고 혀가 얼얼한 정도의 땡초를 넣은 깡장에 호박잎 쌈 앞으로 데리고 간다. 가장 좋았던 글은 명절날 차례도 안 지내고 함께 모이지도 않는 집안을 콩가루 집안이라고 하며 자신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담은 「콩가루의 명절상」이었다. 연휴 때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작은언니와 술안주에 최적화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다 먹으면 치킨까지 시켜서 먹는단다. 또래의 여성들이 콩가루인 자신을 부러워도 한단다.

질보다 양을 따지는 미식보다는 주로 폭식을 즐기는 나로서는 『오늘 뭐 먹지?』에 실린 음식이 놀랍기만 하다. 국물을 내기 위해 좋은 멸치를 사서 냉동실에 정리해 놓고 반건조 생선도 미리 사서 넣어 놓는다. 젓갈을 담가 먹기도 하고 아삭한 오이지를 먹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오이를 짠다. 말린 무청을 사서 삶고 줄기를 벗기고 깨끗이 씻어 냉동실에 얼린다. 일 년치 먹을 시래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음식은 간단하게 먹고자 한다면 한없이 간단해질 수 있고 정성을 다하자면 끝이 없는 세계이다.

『오늘 뭐 먹지?』를 읽는데 시간이 순식간에 가버렸다. 너무 몰입해서 읽은 걸까. 간짜장에 담긴 일화를 끝으로 끝. 아쉬워서 다음 이야기는 없나 정말 이게 끝인 건가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삶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순하게 정의한다면. 먹고살자고 하는 거다. 천 년만 년 살 것도 아니고. 부귀영화를 보겠다는 것도 아니니까. 먹고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먹으며 정을 나누는 것. 먹다가 가끔 어린 시절이나 기억 속 묻어 두었던 과거로 소환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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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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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이 된 밤에 『일주일』을 읽었다. 전자책으로 읽으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이북 리더기의 배터리를 확인했다. 80%. 이 정도는 괜찮다. 밤을 보내기에는. 토요일 밤이었다. 일요일이라는 기대로 배달 음식을 시켰을 텐데. 갑자기 불이 꺼진 황당함과 그럼에도 배달 오토바이는 달려오고. 사람들은 걸어 내려와 음식을 받아 가고 핸드폰의 손전등 앱으로 불을 밝히고 먹었을까. 언제 불이 들어올까를 생각하며 먹었을테지.

『일주일』에는 우연한 만남이 사랑으로까지 이어지는 두 남녀가 나온다. 교수에서 정치인으로 직업을 바꾼 남자, 진유철. 소설가로 살아가는, 하도연. 터키에서 만난 그들은 신분, 나이, 결혼 여부를 묻지 않은 채 일주일을 보낸다. 첫 만남 때부터 서로에게 마음이 쓰인 그들은 유철의 공세로 사랑을 나눈다. 유철이 먼저 한국으로 떠나고 소설 구상차 온 도연은 잠시 더 머문다. 거기까지인 줄 알았다.

만남에 대한 기약이나 기대를 하지 않고 보낸 시간이었다. 생각이 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일상은 바쁘게 돌아갔고 가끔 생각만 나는 정도였다. 도연이 K 시의 도서관 행사에 초대되어 그곳으로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올해의 책으로 뽑혀 도연은 편집자와 함께 K 시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그가 있었다. 이 년 전에 터키에서 만났던 그가. 양복을 입고 가슴에는 국회의원 배지를 단 채.

사랑은 단순하다. 사랑은 숨길 수 없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보는 것. 『일주일』에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들이 나온다. 유철과 하연이 보낸 일주일은 시간을 건너 뛰어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다시 만난 두 남녀는 그때 못다 한 사랑의 인연을 이어간다. 위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파격을 넘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일주일 이후의 시간을 연장한다.

책의 중반쯤 읽어갈 때 불이 들어왔다. 새벽의 시간. 순한 사람들만 사는 것일까. 불이 켜진 줄도 모른 채 잠이 든 것일까. 불빛은 띄엄띄엄 켜져 있을 뿐이었다. 잠시 실망했다가 다시 기뻐하는 순간에 소설을 읽는다. 아침 일찍 방송이 흘러나왔다. 정전이 된 이유를 설명하고 사과하는 방송. 『일주일』에는 다른 사랑의 형태도 나온다. 자신만의 방법이 신념처럼 굳어져 타인에게 상처를 가하는. 불이 들어왔다가 꺼지는 순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정전과 같은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가 있고 사랑을 무기로 상대를 어려움에 처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삶과 사랑의 솔직함을 『일주일』은 말한다. 순간을 벗어나기 위한 거짓을 이기는 힘은 사랑이라고. 그들의 시간이 일주일이 지나고 이 주일, 그럴 수 있는 한 계속되기를 바라며 다시 밝아진 냉장고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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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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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으며 많은 부분에서 뜨끔했다. 그가 실수라고 먼저 밝히는 '결정 장애'라는 말로부터 시작해서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 행했던 행동과 순간이 부끄럽게 느껴진 것이다. '결정 장애'는 이것도 저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자신을 지칭할 때 흔히 쓰던 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이고 장애라는 말에는 '부족함, 열등함'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한 개인은 다양하게 정의 내릴 수 있다. 그것을 특정 성별로 단순하게 구분 짓거나 직업적인 분류로 나눌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쉽게 얘기하곤 했던 여자는 이래야 한다든가 남자는 저래야 한다는 이분법의 시각을 버려야 한다. 여성이면서 학생일 수 있고 주권을 가진 국민일 수 있는 것이다. 사회가 합의하는 평등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함을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말한다. 처음부터 우리는 평등할 수 없다. 평등하다고 믿는 자신이 있을 뿐이다. 평등하지 않다고 여기게 되는 순간 맞게 될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속한 사회는 정의롭다고 믿는 것이다.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권을 공부하고 차별을 연구하는 저자조차도 그 말이 차별의 언어인지 모른 채 썼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곳곳에서 만난다"라는 말로 차별의 문제를 밝혀 나간다. 흑인 분장을 하고 흑인을 비하하는 개그를 할 때 누가 웃는가가 아닌 누가 웃지 않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개그를 할 때 누군가를 웃길 생각만 했지 누가 웃지 않고 슬퍼할지를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나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불편한 시선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편견을 가지고 현상을 들여다보려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별을 당했다는 기억이 있었지 차별을 했다는 순간을 떠올리지 못하고 살았다.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로의 이행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쌓일 때 우리는 차별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외모와 성별로. 출신 지역과 학교로. 부모의 존재 여부로.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나의 피해 망상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었다. 아니었다. 이 부분을 읽고 나서였다.

어빙 고프먼은 부정적인 고정관념인 낙인이 내면화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 사회가 부여한 낙인을 자신 안에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개인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굳이 타인들이 노골적으로 차별하지 않아도 본인들이 소극적으로 행동하면서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차별적인 구조가 유지된다. 차별을 받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부족하고 열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저항을 하지도 않는다.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中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차별을 받았던 자신이 절대 예민한 것이 아니었음을 오랫동안 견고하게 지켜져 왔던 차별의 역사를 열거하면서 위로해 준다. 국가와 사회, 집단이 행했던 고정관념이 우리를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만들었다. 최근의 시사 문제를 끌어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오랫동안 차별과 인권을 연구해온 학자답게 보편적인 상식을 풀어 놓는다. 누구라도 이해하고 호응할만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약자끼리는 연대가 가능하다? 그런 줄 알았다. 약자라고 스스로를 여기던 그들은 다른 지위를 가진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밝힌다. 우리를 열등하게 만드는 것과 열등함을 낙인처럼 받아들이며 살게 하는 것은 자신들은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우리였다. 우리가 우리를 차별주의자로 만들었다. 내가 스스로를 평등과 정의의 세계에서 멀어지게 한 것이다. 누가 웃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면 된다. 누가 웃지 않고 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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