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하품은 맛있다
강지영 지음 / 네오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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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연애 로맨스 이야기를 읽거나 본 적이 언제였던가. 본 방송 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앞을 사수했던 적은 현빈, 하지원 주연의 《시크릿 가든》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김주원이 입은 반짝이는 운동복과 길라임의 산뜻한 단발머리에 마음을 빼앗겨 토요일과 일요일 밤을 보냈다. 영혼이 뒤바뀌면서 벌이는 로맨스 활극이라니. 스턴트맨이라는 여주의 직업도 멋있었지. 클리셰로 범벅이었지만 (갇힌 공간에서 벽에 밀치기 같은) 그 또한 그때는 마냥 마음이 두근 반 세근 반이었지. 


이후로 몸은 그대로인데 영혼이 바뀌는 설정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노인이 어려지기도 하고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서 미래를 바꾸기도 하는. 영혼 체인지, 타임 슬립 장르는 시가 이후와 이전으로 갈리지 않을까라는 이상 방구석 텔레비전 키즈의 논설이었습니다. 아무튼 시가를 보면서 달달한 연애 이야기의 항마력을 모조리 끌어다 썼는지 로맨스물에는 눈도 주지 않고 있다. 오직 장르물. 사건이 일어나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데 주인공들이 눈이라도 마주치는 장면이 나온다? 과감히 다른 장르물로 넘어간다. 제발 사건에만 집중하라고. 


강지영의 장편 소설 『하품은 맛있다』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다. 미리 보기로 읽은 첫 페이지에 감화되어서. 배경 묘사로 질질 끄는 거 없이 바로 사건 현장으로 무기력한 ISFP를 데리고 간다.(연휴 동안 집에서 나가지 않고 있는 나를) 원룸에 특수청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고인을 위해 묵념을 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고독사, 자살사, 사고사든 죽음은 도처에 널려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사람이 죽은 이후를 담지 않는다. 벽지와 바닥에 튄 피는 어떻게 제거하나.


학자금 대출 삼천이 나 잡아봐라 놀리는 모양으로 따라다니는 박이경이 『하품은 맛있다』의 주인공이다. 작은 키에 못생긴 얼굴을 가졌다고 스스로 말하는 이경. 면접은 번번이 실패고 그나마 일당이 센 특수청소 일로 생계를 꾸려 가고 있다. 아빠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 중이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간호하고 있다. 돈이 모인다 싶으면 아빠 병원비와 생활비로 쓰인다.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좌절감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원룸 특수 청소를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이경은 잠에 빠진다. 눈을 떴을 때 이경은 다른 몸에 들어가 있다. 현실의 이경과는 전혀 다른 몸이었다. 사는 곳도 마찬가지이다. 아름다운 몸에 아름다운 엄마가 있는 곳에서 이경의 의식은 눈을 뜬다. 명문대 성악과에 재학 중인 다운이라는 여성의 몸에서 이경은 놀라운 일들을 경험한다. 꿈을 통해 타인의 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시간에 갇힌채 일어나는 사건들 앞에서 이경은 선택이 아닌 강요에 의해 앞으로 나아간다. 


꿈으로 타인의 몸과 의식을 지배한다는 설정의 『하품은 맛있다』의 결말은 지독하리만치 기괴하다. 인간은 선과 악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명제를 결말을 통해 보여준다. 겉으로 보면 인과응보의 교훈적인 주제로 끝을 맺는 것 같지만 나쁜 놈들 대신 내가 나쁜 놈이 되어 죽지 않고 살아가리라는 특이한 형태로 소설의 문을 닫는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이 벌이는 이판사판 공사판의 끝까지 간다의 설정은 알고 보니 회장님 아들 혹은 첫사랑의 그 애라는 뻔하고 지루한 설정보다는 봐줄 만하다는 게 게으름뱅이 집순이의 주장이다. 제발 회사에서 그러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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