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오늘도 너무 잘 샀잖아 - 확고한 기준으로 가치를 소비하는 이 시대의 생활비법
안희진 지음 / 웨일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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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일어나서 하는 짓이라곤 쇼핑몰 앱에 들어가 보는 거. 화장실에 앉아서 오늘은 어떤 상품이 올라와 있나 장바구니에 담아둔 상품에 할인 쿠폰이 붙어 있나 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고배늦(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이라는 거 아는데 작고 귀여운 통장의 사정으로 장바구니에 담아 놓기만 한다. 그러다 할인 딜이 뜨거나 기습적으로 쿠폰을 줄 때 결제한다. 한때는 위메프의 노예였다. 그놈의 딜. 싸다니까 싸구나 하면서 매일 같이 주문했다.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관계로(나란 사람, 옛날 사람. 그 흔한 신용 카드 한 장 없다.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할부 기능으로 마구 지를 것이라는) 핸드폰 소액 결제로 마구 질러댔다. 양말, 커피, 맨투맨, 바지, 세제 같은 정말 필요한 것으로만. 그러다 소액 결제 한도를 넘어가는(최대 30만 원까지였다)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하고 각성하고 앱을 과감히 지웠다. 그러다 이제는 돌고 돌아 딱 하나의 쇼핑몰 앱만 남겨 두었다.


안희진의 『미친, 오늘도 너무 잘 샀잖아』는 제목이 너무 파격이라 안 읽을 수가 없었다. 맥시멀리스트에서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훅을 날리는 듯한 제목. 뭐야. 뭘 얼마나 잘 샀길래. 제목에 '미친'을 붙이냐고. 최소한의 소비로만 살아가려고 결심한 요즘의 나는, 우울하다. 누군가 그랬다. 돈을 모으는 재미도 쏠쏠한데 돈을 쓰는 재미는 더 쏠쏠하고 신나고 대박이다고.


나는 못 쓰지만 누가 돈 쓰는 걸 구경하는 건 신나지 않을까. 대리 만족한다는 기분으로 『미친, 오늘도 너무 잘 샀잖아』를 읽었다. 실제 안희진 작가는 회사에서 직급이 대리였다. 대리가 돈 쓰는 걸 구경하며 그걸로 대리 만족. 『미친, 오늘도 너무 잘 샀잖아』는 소비의 소비에 의한 소비를 위한 생활을 하는 이 시대 진정한 소비인의 소비서이다. 사는 걸 너무 좋아한다. 절약에 관한 책만 읽다가 이토록 신나게 팡팡 돈 쓰는 이야기를 읽으니 내 손이 다 떨린다.


인생 뭐 별거 있어. 장바구니에 담아 둔 독서대, 필통, 커피, 잼, 열네 권의 책을 질러라 질러. 지름신이 강림하사 손가락이 저절로 클릭을, 그것은 아니고. 이상한 아이디 끝에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말해도 부끄럽지 않을 아이디를 만든 안희진, 코튼 작가는 욜로 하다가 골로 자게 되리라는 흥청망청의 소비를 유도하는 게 아닌 아버지가 좋아할 하늘 보리 음료와 구멍이 나지 않는 양말을 고민 없이 살 수 있게 된 직장인의 행복 소비의 풍경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돈을 쓰니 신나게 글을 쓰게 되더라는 쓰다의 다양한 쓰임새가 쓰인 『미친, 오늘도 너무 잘 샀잖아』. 직장인의 일주일을 위해 보디 워시는 기본 다섯 개가 필수. 옆자리 친한 언니를 만나서 출근하는 일과 그 언니와 점심을 뭘 먹을까 고민하는 일로 출근의 부담을 던다. 토이 스토리 한정판 굿즈와 도널드 덕 머그컵을 사기 위해 일코 행세를 한다. 회사에 가야 하는 이유로는 오직 돈을 벌어 신나게 쓰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안희진. 겁나 솔직.


한 달 뒤 미래의 내가 결제할 테니까 질러둔 다양한 품목의 할부를 갚아 나가 신용도를 올리기 위한 회사의 외거 노비의 신나는 소비 생활을 보고 있으면 대신 신난다. 격하게 공감하면서 말이다. 알 수 없는 내일에 투자할 돈 따윈 없다. 오늘 먹을 빵과 막걸리가 있을 뿐이다고 말한다. 대체 월급이 얼마나 되길래 소비에 고민이 없냐 의문이 드는데 자기 키만큼 번단다. 키가 3미터, 4미터, 5미터 일리는 없고. 평균적인 키라고 밝힌다. 저축도 한다고.


과소비는 없다. 나와 주변인을 위한 과하게 귀여운 소비가 있다. 그래, 사는 거 별거 있나. 자기 키만큼 벌어서 오늘의 나를 위해 쓰는 거지. 향기 나는 비누를 사서 씻고 편의점에 들러 뚱뚱한 라테를 사서 마시는 오늘을 위해서. 미친, 오늘도 너무 잘 사서 미친 오늘도 너무 잘 살았다. 글을 쓰기 위해 12개월 할부로 노트북을 지르고 눈여겨보던 노트북 파우치 샀다는 후기를 읽고서 웃음이 나왔다.


울고 있는 나를 위로해 주는 건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이 또한 지날 갈거다 같은 개떡 같은 말이 아니라 잠옷, 떡국 컵라면, 타르트 같은 실체가 있는 물건이라는 걸 누가 사주는 게 아닌 내가 벌어서 나에게 선물할 때 힘이 나서 돈을 쓰기 위해 다시 일을 하러 간다는 걸 『미친, 오늘도 너무 잘 샀잖아』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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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사랑 -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 글방
이슬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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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논술 교사로 일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무려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왕복 두 시간이 무슨 대수냐고 하겠지만 지방에서 두 시간은 큰마음을 먹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출퇴근 시간이다. 이동 시간만 두 시간이지 일어나서 씻고 김밥 한 줄을 사서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시간을 더 하면, 휴. 어쩔 때는 가기 싫어서 울기도 했다. 월급은 90만 원이었는데 그중에 차비로 30만 원이 깨졌다.


프랜차이즈 논술 학원이었다. 책 한 권을 읽고 교재를 풀어 나가는 식이었다. 책의 내용과 느낌을 묻고 주제에 맞춰 글을 써 내면 끝나는 얇은 교재로 가르쳤다. 훌륭한 교사는 아니었다. 훌륭해야 하는데 나는 학원의 문을 열기 전에 지쳐 버렸다. 차 멀미를 느끼며 뱃속으로 김밥을 욱여넣느라 땀이 났다. 구두를 신고 뛰어오느라 숨도 찼다. 원장은 학부모들 눈이 있으니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장과 구두를 강요했다.


『부지런한 사랑』은 글쓰기 교사로 일했던 이슬아의 몇 년간의 시간을 다룬다. 글 속에 이슬아는 내가 가지지 못했던 글쓰기 교사로서의 훌륭함과 다감함, 세심함을 가지고 있는 교사였다. 카페 알바와 누드모델 일로 생계를 꾸려가는 게 여의치 않은 이슬아는 전단지를 붙여 글쓰기 수업을 받을 학생을 모집한다. 두 살 터울의 형제를 첫 고객으로 모셨는데 강력한 포스를 가진 형제님들이었다.


서울에서 여수로 KTX를 타고 왕복 여덟 시간이 소요되는 글방의 교사로도 일했다. 여수 글방에서 만난 아이들의 글이 『부지런한 사랑』 안에 담겨 있다. 원고지에 쓴 아이들의 글. 때론 놀랍고 신기롭기까지 한 시선에서 쓰인 글. 글쓰기 보다 밖에 나가 노는 것이 더 즐거웠겠지만 아이들은 글을 써야 하는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 네모 칸의 자신의 마음을 담는다. 스물다섯 살의 이슬아가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역시 그들을 향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다.


열두 살 김시후는 자신이 쓴 글을 낭독하면 종종 내가 좋아진다는 말을 한다. 열두 살의 그 아이는 알까. 나이를 먹으면 자주 내가 싫어진다는 것을. 나를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느라 시간을 다 허비한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열두 살의 시후에게 글쓰기가 종종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어서 일면식도 없는 내가 다행으로 느낀다는 것을. 『부지런한 사랑』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슬아와 함께 했던 어른들의 글쓰기의 장면도 포착되어 있다.


장비빨을 내세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 문구점에 가서 연필과 연습장을 사는 일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 돈이 들지 않는 일 중에서 최고 효율을 자랑하는 일. 응미, 응숙 자매님의 말처럼 '녹슨 몸을 실감하지 않고도 배워볼 수 있는' 일은 글쓰기. 책을 한 권씩 읽고 느낌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뭐라도 쓰겠다는 심정으로 리뷰를 쓴다. 문장을 잘 쓰겠다는 주제를 완벽하게 끌어내겠다는 생각은 오래전에 버렸다. 그저 나를 위한 일로써, 쓴다.


글을 쓰고 나면 조금 괜찮아진다. 성취라는 보이지 않는 업적을 쌓은 것 같아서. 재능보다는 꾸준함으로 매일을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서. 학원으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문예지를 읽었다. 괜찮은 문장이 나오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막상 아이들을 보면 문장은 머릿속에서 휘발되었다. 겨우 찾아낸 문장을 들려주어도 아이들은 심드렁했다. 오해가 생겼고 그 오해를 풀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잊고 싶었던 시간이었는데 『부지런한 사랑』을 읽으며 차라락 떠올랐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든 글을 쓰는 나 자신으로 그래서 내가 좀 더 좋아지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 기회를 찾아 도전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누가 불러 주지 않아도 누가 알아 주지 않아도 나의 시간을 쓰고 싶다. 용기 있는 자들이 써 내는 글을 읽으며 내가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적힌 글을 읽는 배움의 자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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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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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는다면 『복자에게』는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앉아 있는 모양만 바꿀 뿐 비루한 몸뚱이를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그럴 수 없으리란 걸 알았다.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마구잡이로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전학, 1999년, 바람, 안녕, 가족과의 이별' 같은 단어가 나오면서 미숙하고 날카롭기만 했던 사춘기 시절이 강제로 소환되었다.


사업이 망해서 이영초롱이는 제주로 내려온다. 고모가 보건소 의사로 있는 고고리섬으로. 이를테면 남동생은 남자인 까닭에 그대로 서울로. 영초롱이는 여자라 제주로. 본섬도 아닌 배를 타고 한 번 더 들어가야 하는 고고리섬에서 영초롱은 좀처럼 적응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 그 애를 만난다.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자신의 뒤를 따라오며 말을 거는 그 애. 복자라는 아직도 애 이름을 이런 촌스러운 이름으로 지었을까 의문이 들게 만드는 그게 실명이 맞는지 아님 집에서 애칭으로 부르는지 한 번쯤 물어보고 싶게 만드는 이름을 가진 그 애 복자를.



『복자에게』를 다 읽고 나면 나는 나의 부서지고 훼손된 기억과 감정을 덧붙여 진지하고도 길고 다소 이상한 농담 섞인 독후기를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우린 모두 한 번씩 아니 몇 번씩이고도 원치 않는 이별과 재회를 반복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이 잘못인 줄도 모르고 잘못을 저지르고 나중에 찾아오는 후회로 가슴을 쳐야 했던 순간이 있었으니까. 꾸미지도 삭제하지도 않은 사실적인 기억을 『복자에게』라는 소설의 감상에 기대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서. 소설의 끝이 있다는 게 다행이지만 나의 시간은 현재 진행 중이어서 책을 다 읽고도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울분과 자책, 희미한 위로의 마음을 계속 간직할 수 없었다.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허기를 달래고 뉴스를 보며 그들이 쓰는 언어에 담긴 노골적인 편파와 지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무지했던 과거의 나는 뉴스가 알려주는 대로 알기만 했다. 그리고 믿었다. 현상의 다른 면을 굳이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영초롱은 복자와 안정된 관계를 이어가지 못한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초롱이 관여를 했고 말을 잘못했고 복자는 그걸 이해하지 않았다. 복자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수동이 아닌 이해하지 않았다는 능동의 형태로 영초롱이의 행위에 절교라는 형식으로 선을 그었다. 사실, 내 맘은 그게 아니었어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려 했지만 영초롱은 마음이란 게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며 어른이 되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지도 못하며 영초롱과 복자는 살아간다. 그러다가 영초롱이 제주 성산 지법으로 거의 좌천되다시피 내려온다. 다랑초 시절 자신을 좋아하던 고오세를 만나 복자가 제주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복자가 지금 힘들다고도. 영광 의료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위험 약품을 가루로 만드는 파우더링 작업을 했는데 그 일로 아이를 유산했다고. 복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간호사들도 유산을 하고 기형아를 출산했다는 상황을 듣는다.


판사가 되어 모든 일을 '판사 에고'로 바라보는 영초롱. 위험이 존재했고 그 위험 속에 자신들을 밀어 넣었다는 사실을 진실로 만들려는 복자. 『복자에게』는 제주의료원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다. 제주에서 한동안 지냈던 김금희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하던 생각을 버리려던 차에 의료원 사건을 접한 뒤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러니까 소설을 쓴다는 건 무엇을 알고 나서야 가능하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무엇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인 거다.


뉴스에서 알려주지 않은 진실. 감추고 왜곡하고 이익을 떠올리며 편집한 사실을 내보내는 뉴스에 나오지 않은 진실이 『복자에게』에 있었다. 힘든 노동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동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사람들의 연대를 읽을 수 있는 소설. 치사하고 더러운 세상의 이면에 감춰진 따뜻한 손을 내밀어 용기를 주고받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는 『복자에게』. 소설은 너로 살아갈 수 있다고 울고 있는 나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어 준다.


슬픔의 시간을 건널 수 있는 건 농담이었다. 우리는 은근슬쩍 건넨 농담에 웃어 주고 안녕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안녕을 물어야 하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나의 실패는 나의 실패로. 너의 실패는 나의 서러움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어른으로 살아가야 한다. 슬픔을 극복하는 힘에는 단순한 진실이 있었다. 나는 잘 할 수 있다고 몇 번이고 나에게 힘을 넣어 주는 일. 그 힘으로 나의 실패를 과거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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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쏜살 문고
이지원 지음 / 민음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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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안 좋다. 많이 안 좋다. 요즘엔. 성격 파탄자 납시었다, 여기. 사소한 일에 짜증 내고 개지랄을 떨고 있다. 조울증 비슷하게 감정선이 무너지고 있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날씨 탓이라고 해도 쉴드가 안 된다. 다가오지 않을 미래의 일로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난리굿을 피우고 있다. 난 안 될 거야. 눈을 감아봐. 그게 너의 미래야. 하는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내내 듣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신세 한탄을 하고 싶지도 않고 한다고 해서 들어줄 이도 없으니 글로 쓴다. 더럽고 치사하고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해서 다 때려 주고 싶다고.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물으면 납득을 시킬 수 없게 힘들다. 그래도 예를 하나 들자면 호의를 베풀었는데 돌아오는 건 당연하다는 반응, 뭐 그런 거. 나 역시 그런 면이 굉장히 많지만 이걸 내가 당하면 짜증 나는 거다. 자세하게 쓰고 싶지만 겁나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지금까지 쓴 것만 보면 겁나 이상한 사람 맞지만-참는다. 꼬였다고 느끼겠지만 맞는 사실이라 부정하지 않겠다.


이지원의 산문집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를 읽으며 나만 그런 거 아니구나, 깊은 안도를 했다.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기분 나쁨을 명확하게 서술해 주고 있어서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끄덕. 책의 첫 장을 열면 '이 책이 재수 없는 점'이 나열되어 있다. '비꼰다, 사소하다, 실명을 언급한다' 등이 있다. 아, 내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죄다 갖추고 있는 배우신 분이 쓰신 거다.


사소한 거에 목숨 거는 데 실명을 언급해서 비꼬지 못한다. 한마디로 소심한데 진실하지 못하고 불평만 하는 나란 사람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라는 거지 같은 신용카드 회사의 만행을 시작으로 이지원 교수가 느낀 일상의 편협함, 부조리, 쩨쩨함이 책의 곳곳에서 폭탄처럼 터진다. 빵빵. 재미있게. 공격받을까 봐 에둘러서 표현하지 않고 실명을 쓴다.


뒷감당 되나. 되겠지. 요즘 시대엔 솔직함도 있는 놈들이나 가지고 있는 거다. 눈치 보지 않고 무서울 거 없는 이들은 솔직하다. 그래서 더 재수 없음. 아니 부럽다. 나도 기분 나쁜 거 있는 그대로 쓰고 싶은데 만에 하나 로또 1등 되고 번개 맞을 확률로 누군가 이 글을 보는 일이 있을까봐 비겁하게 돌리고 돌려서 우울하다고만 쓰고 있다.


책이니까 가능하다. 활자니까 가능하다. 삼성 까고 교수 사회 까고 아파트 단지 주민 까는 걸 육성으로 듣고 있으면 내 귀에서 피가 나니 너도 피가 날 때까지 때려주고 싶었을 거다. 쟤는 불만 있는 애야, 담배는 없지. 하하하. 이러면서. 무리한 농담, 죄송. 책이어서 읽기 싫으면 던져도 되고 냄비 받침으로 써도 되니까. 읽다 보면 납득이 가는 비꼼이고 불평이어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게 된다.


교수가 써서 어려우면 어쩌지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일단 읽고 잘난체할까 했지만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는 술술 읽힌다. 개저씨,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가득하다. 자신의 비정상성을 글로 쓰면 된다. 어차피 여기 정상인 사람은 없으니까. 다들 괴팍하고 무논리적인 면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도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를 읽고 분석적이고 감각적인 리뷰를 써야 하는데 기분 나쁨과 더러움에 대해 썼다. 읽거나 말거나.


술 마시면서 뒷담화 하고 친한척하면서 우정도 뭣도 아닌 동지애를 다질 수 있겠지만 안 한다 이제. 대신 꼰대가 되지 않으려 하지만 누가 봐도 꼰대인 본인이 지랄 맞은지 아는 사람이 쓴 책을 읽고 낄낄거리면서 밤의 시간을 보낸다.


삼성을 향한 증오라고는 하지만 그 대상의 정체는 묘연하다. 삼성은 손에 잡히는 (죽빵을 날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뭐라 규정하기에는 조직의 범위가 애매하고 구성원도 각양각색이다. 존경하는 과학자인 이기주 박사님이 삼성에서 일하고, 동료 교수인 윤여경 선생의 동생도 삼성맨이다. 대학 동기도 후배도 후배의 남편도 사촌 동생의 남편도 삼성에서 일한다. 삼성을 욕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기업을 사유 재산으로 여기는 회장 일가의 되먹지 못한 도덕성이 보기 싫고, 시장의 다양성을 무너뜨리는 종합 상사의 행태에 짜증 나고, 착취를 일삼는 고용 방식에 분노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 삼성이 내보이는 허접한 디자인을 욕할 때도 있다.

(이지원,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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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 매일의 기분을 취사선택하는 마음 청소법
문보영 지음 / 웨일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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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버린 것은 예전에 썼던 이력서다."


문보영의 산문집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의 처음은 '오늘 버린 것'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도 그래서 따라 해보았다. 그렇다. 정말. 오늘 버린 건 이력서다. 무려 8년 전에 썼던 이력서. 내게 쓴 메일함에서 건졌다. 파일을 열었더니 앳된 나의 심상한 얼굴이 나왔다. 그동안 다닌 학교와 옮긴 직장의 별거 없는 이력이 보였다. 구렸다. 이력서 양식이. 모두 다 알고 있는 그 이력서. 편의점에 가면 파는 그 이력서 양식.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이력서를 전부 다운로드했다. 새로운 마음으로 이름, 생년월일, 주소, 학력, 경력, 자격증 란을 채워 나갔다. 한 줄이 더 추가된 이력서. 생각지도 못하게 일을 그만두어야 해서 경건한 마음으로 이력서를 새로 작성했다. 지나간 이력과 과거는 생각하지 말자. 구리고 후진 이력서를 버렸다. 컬러로 프린트한 이력서 다섯 장이 책상에 있다. 구겨지지 않게 잘 모셔 놓았다.


헤어짐에도 예의는 필요하다. 하여 조커가 형님 할 정도로 웃고 다닌다. 목소리 톤은 높아졌고 두서없는 이야기도 곧잘 한다.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는 시인 문보영의 비움 일기다. 하나를 버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불안해서 물건을 마구 사들이던 시절이 있었다. 문구점에 가면 공책, 샤프, 볼펜을. 옷 가게에 가서 맞지도 않을 건데 예쁘다는 이유로 마구 옷을. 돈도 없으면서.


문보영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를 종종 본다. 그곳에서 문보영은 매일 글을 쓴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글을 쓰고 비빔면을 끓여 먹고 책상에 앉아 있다. 거대한 공책에 알록달록한 펜으로 글을 쓰는 모습을 좋아한다. 그걸 보고 있으면 나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부지런도 하구나. 타인의 삶에서 용기를 얻는 식이다. 거대한 공책에 비움 일기를 쓰고 있었구나. 그렇게 모인 조각 글이 책으로 나왔구나. 대단해.


물건을 살 때 버리는 건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쓴다는 마음으로 산다. 사실 생각해 보면 딱히 필요하지도 않는데 필요를 만들어 돈을 쓴다. 다이소, 모던 하우스를 좋아하는데 잘 가지 않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필요한 걸 사면 괜찮은데 필요해서 사는 거야 같은 합리화를 하며 물건을 사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사고 나서 후회가 대부분이다. 왜 샀나. 나는 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텀블러와 색연필, 마스킹 테이프, 실내화를 사고 있나.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추억, 의미, 기억을 물건에 부여하며 끌어안고 사는 어른이들. 책에는 쓰레기부터 날짜 지난 달력, 병원에서 마신 커피, 신발 앞코에 넣어 놓은 신문 뭉치, 엄마의 오줌 등 다양한 사물을 비움으로써 얻은 일종의 철학이 문보영식의 웃길 것 같은데 딱히 웃기지 않은 농담과 함께 버무려져 있다.


"오늘 얻은 것은 펭수 케이블 홀더, 펭수 스탬프다."


이력서를 버리고 펭수 템을 얻었다. 비우면 채워진다. 과거의 나와 결별했더니 귀여워질 나를 위한 아이템이 도착했다. 새롭게 고민해봐야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 끊임없는 고민, 인생이란. 결국 해야 하는 일을 하겠지만. 상황극으로 새로 쓴 이력서를 내밀며 나 좀 뽑아달라고 했더니 바로 탈락이라는 말을 들었다. 깔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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