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 매일의 기분을 취사선택하는 마음 청소법
문보영 지음 / 웨일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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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버린 것은 예전에 썼던 이력서다."


문보영의 산문집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의 처음은 '오늘 버린 것'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도 그래서 따라 해보았다. 그렇다. 정말. 오늘 버린 건 이력서다. 무려 8년 전에 썼던 이력서. 내게 쓴 메일함에서 건졌다. 파일을 열었더니 앳된 나의 심상한 얼굴이 나왔다. 그동안 다닌 학교와 옮긴 직장의 별거 없는 이력이 보였다. 구렸다. 이력서 양식이. 모두 다 알고 있는 그 이력서. 편의점에 가면 파는 그 이력서 양식.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이력서를 전부 다운로드했다. 새로운 마음으로 이름, 생년월일, 주소, 학력, 경력, 자격증 란을 채워 나갔다. 한 줄이 더 추가된 이력서. 생각지도 못하게 일을 그만두어야 해서 경건한 마음으로 이력서를 새로 작성했다. 지나간 이력과 과거는 생각하지 말자. 구리고 후진 이력서를 버렸다. 컬러로 프린트한 이력서 다섯 장이 책상에 있다. 구겨지지 않게 잘 모셔 놓았다.


헤어짐에도 예의는 필요하다. 하여 조커가 형님 할 정도로 웃고 다닌다. 목소리 톤은 높아졌고 두서없는 이야기도 곧잘 한다.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는 시인 문보영의 비움 일기다. 하나를 버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불안해서 물건을 마구 사들이던 시절이 있었다. 문구점에 가면 공책, 샤프, 볼펜을. 옷 가게에 가서 맞지도 않을 건데 예쁘다는 이유로 마구 옷을. 돈도 없으면서.


문보영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를 종종 본다. 그곳에서 문보영은 매일 글을 쓴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글을 쓰고 비빔면을 끓여 먹고 책상에 앉아 있다. 거대한 공책에 알록달록한 펜으로 글을 쓰는 모습을 좋아한다. 그걸 보고 있으면 나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부지런도 하구나. 타인의 삶에서 용기를 얻는 식이다. 거대한 공책에 비움 일기를 쓰고 있었구나. 그렇게 모인 조각 글이 책으로 나왔구나. 대단해.


물건을 살 때 버리는 건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쓴다는 마음으로 산다. 사실 생각해 보면 딱히 필요하지도 않는데 필요를 만들어 돈을 쓴다. 다이소, 모던 하우스를 좋아하는데 잘 가지 않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필요한 걸 사면 괜찮은데 필요해서 사는 거야 같은 합리화를 하며 물건을 사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사고 나서 후회가 대부분이다. 왜 샀나. 나는 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텀블러와 색연필, 마스킹 테이프, 실내화를 사고 있나.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추억, 의미, 기억을 물건에 부여하며 끌어안고 사는 어른이들. 책에는 쓰레기부터 날짜 지난 달력, 병원에서 마신 커피, 신발 앞코에 넣어 놓은 신문 뭉치, 엄마의 오줌 등 다양한 사물을 비움으로써 얻은 일종의 철학이 문보영식의 웃길 것 같은데 딱히 웃기지 않은 농담과 함께 버무려져 있다.


"오늘 얻은 것은 펭수 케이블 홀더, 펭수 스탬프다."


이력서를 버리고 펭수 템을 얻었다. 비우면 채워진다. 과거의 나와 결별했더니 귀여워질 나를 위한 아이템이 도착했다. 새롭게 고민해봐야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 끊임없는 고민, 인생이란. 결국 해야 하는 일을 하겠지만. 상황극으로 새로 쓴 이력서를 내밀며 나 좀 뽑아달라고 했더니 바로 탈락이라는 말을 들었다. 깔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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