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 연주자 둘이 나란히 서서 어제 내린 비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컴퓨터로 그 동영상을 지켜보던 K는 자기도 모르게 놀랐다. 다른 곳도 아니고 북에서 온 연주자들이 감성 짙은 곡을 연주하다니……. K는 그 가사를 잘 알고 있다.

어제는 비가 내렸네/ 키 작은 나뭇잎 새로/ 맑은 이슬 떨어지는데/ 비가 내렸네/ 우산 쓰면 내리는 비는/ 몸 하나야 가리겠지만/ 사랑의 빗물은 가릴 수 없네.’

마치 서울 어느 유명 카페에서 출장 온 연주자들처럼 몸을 흐느적이기도 하며 색소폰 연주에 심취해 있는 북에서 온 사람들. 살벌한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을 것 같았던 그들도사람이었다. ‘어제 내린 비의 촉촉한 감성에 젖어 있는 모습이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다.

환갑 넘은 K어제 내린 비연주에 쉬 빠져든 까닭이 있다. K의 젊은 시절, 몇 번을 데이트해도 K에 대한 경계심을 조금도 늦추지 않던 여자가 있었다. 정확히는 K에 대한 경계심이라기보다 남자에 대한 경계심이라 봐야 했다. 그것은 자신을 지켜가며 좋은 남자를 맞으려는 여자의 본능이었다. 하지만 비가 촉촉이 내리던 그 날 거리에서, 여자는 K의 어깨에 자신을 기대었다. 몇 번을 데이트해도 항상 일정 거리를 두고 걷던 여자의 투항(投降)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K가 든 우산 속에 들어오지 않으면 여자는 비에 젖을 판이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 촉촉이 내리는 비에 여자 마음이 이미 젖어 있었으니까.

여보. 애 좀 봐요!”

아내가 방문을 열고 소리치는 바람에 K는 화들짝 놀랐다. 아내가, 며느리가 출근하면서 맡긴 손주를 데려오며 말을 이었다.

장 좀 보고 올게.”

K가 하는 수 없이 동영상의 볼륨을 바짝 낮추고 손주를 인수받는데 웬 지린내가 풍긴다. 손주가 그 새 오줌을 쌌나 보다. 어제 내린 비 동영상에 촉촉하게 젖던 K는 한숨을 내쉬며 손주의 축축한 기저귀를 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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