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무게가 있다면 어느 지하 공간에 물처럼 고여 있지 않을까?
스튜디오는 4층 건물의 지하 1층에 있었다. 그 문을 노크하자‘네에, 들어오세요.’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우리 부부가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30여 평의 넓은 공간에 빛들이 환하거나 어둡게 고여 있었다.
전등불빛들의 명암을 내가 그리 느낀 것은 지하 특유의 서늘한 기운과 고요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잠시 후, 그 고요함 또한 적막해서가 아니라 낮은 볼륨으로 잔잔하게 틀어놓은 경음악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아내가, 지하 공간 한가운데 쌓인 촬영장비들 사이로 모습을 보이는 사내한테 목례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3시 예약했던 사람들입니다.”
“아! 예. 잠시만요. 커피 드시면서 기다려주세요.”
다른 직원은 보이지 않았으니 사내가 사진관의 사장님이었다. 몸에 탁 붙은 간편복 차림에 나이는 4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사내는 한 손님을 작은 소파에 앉힌 채 큰 카메라를 손에 쥐고 촬영하는 중이었다. 사내와 손님을 에워싼 갖가지 조명기구들. 한 아름 크기의 직사각형, 정사각형, 혹은 우산 닮은 장비들이 한결같이 빛을 부드럽게 다루고 있었다.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눈 아프게 강한 조명 빛은 한 점도 끼어들 수 없었다. 그 까닭이 있었다. 조명기구들마다 영화관 스크린을 닮은 하얀 천 재질로 빛들을 만나는 때문이었다.
차를 마시며 둘러보니 30평 지하 공간은 크게‘촬영 작업 공간’과‘갤러리’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다양한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는 갤러리의 나지막한 의자에 앉아 상념에 잠겼다.
이곳을 찾아오기 전 내 오랜 기억 속 사진관은‘큰 풍경 그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손님과, 바닥에 고정된 촬영 기계를 앞뒤로 천천히 움직이며 수시로 특정 포즈를 요구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마그네슘 분말을 팍! 터뜨리는 사진기사가 있는’긴장된 곳이었다. 게다가, 빛이 강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한 조명기구가 있어서 촬영이 끝나면 목덜미에 땀이 배었다. 또한, 사진관 쇼윈도에‘그 동안 이 사진관에서 사진 찍었던 손님들 사진 중 잘 나온 사진들’이 크게 확대되어 전시되었다. 인구가 적은 시골 사진관에서는 그런 사진들 중에 아는 사람이 반드시 있었다. 내가 어느 시골 읍에 살 때다. 건어물가게 뚱뚱한 아주머니가 가끔씩 추억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지금은 뚱뚱하니 볼 품 없지만 어릴 때에는 안 그랬어. 그 사진관에 가 봐. 앞에 붙여놓은 인물 사진들 중 얌전한, 아주 예쁜 소녀가 바로 나라니까!”
지역 주민들의 소중한 추억 제작소 겸 보관소 역할을 하던 사진관들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갔다. 아마 휴대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 있지 않을까? 사람들마다 휴대폰으로도 쉽게 사진을 찍게 되자 사진관들은 설 자리를 잃고 만 것이다.
내 경우만 해도 사진관에서 사진 찍은 기억이란, 재작년 운전면허증을 새로 갈면서 운전면허장 앞 즉석 사진관에서 반명함판 독사진을 찍은 게 유일할 정도다. 작년에 처음으로 소설집 ‘숨죽이는 갈대밭’을 낼 때도 아내가 스마트 폰으로 나를 찍어 책 표지 뒤 프로필 사진으로 올렸고 블로그 활동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며칠 전 아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싶은데요. 지금 사진이 너무 들이대는 느낌이라서 아주 촌스러워. 내가 사진을 잘 찍어줄 곳을 알아냈어. 프로사진작가가 재능기부 차원에서 당신을 찍어주시겠다고 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이번 주 토요일 오후 3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놓았어. 나랑 함께 가면 돼요.”
“당신도 참. 내가 사진 찍히는 것 아주 싫어하는 걸 잘 알면서 그래!”
아내가 그 말에는 대꾸도 않고 다른 말을 했다.
“그 사진관에 갈 때, 엉성하게 입지 말고 좀 괜찮은 옷을 입고 가요. 가능하면 양복 차림이 어떨까?”
어느 하루, 점심 후 오수를 즐기는 나의 소박한 낙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손님이 간 뒤 사내는 조명기구들을 다시 배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카메라 플래시 디퓨저라는 기구(한 아름 크기의 직사각형, 정사각형, 혹은 우산을 꼭 닮은 형태들이었다.) 몇 개로 조명 빛들을 내비치거나 담거나 반사시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막아버리거나.
지상의 태양 빛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인공 빛들이기에 가능한 작업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인공 빛들 또한 태양 빛의 한 변형이지 않나? 인공 빛은 전기의 힘이며 전기란 태양 에너지의 전환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사내는 지하에서 가공된 햇빛들을 조리하고 있었다. 빛들이 피사체에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맡은 역할을 다하도록 공을 들였다. 그런 뒤 디퓨저 너머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내게 따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오셔도 됩니다.”
나보다 아내가 기다린 듯이 사내한테 말했다.
“이이가요, 양복을 입으면 긴장돼서 실수한다나 뭐라나 그냥 털스웨터 이 차림으로 그냥 왔거든요. 어떡하면 좋아요? 양복을 싸 갖고라도 왔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인물 사진 촬영은 자연스러워야 하거든요. 긴장된 차림보다는 편한 차림이 좋습니다.”
아내를 뒤로 하고 나는 편안하게 사내가 조성해 놓은‘빛들의 사정거리’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불안감을 깨끗하게 없애는 사정거리다. 거창한 배경 그림 대신 단순한 흰 벽이, 뜨거운 조명기구 대신 있는 듯 없는 듯한 부드러운 빛들이, 바닥에 고정된 육중한 촬영기계 대신 사내의 손에 쥐어진 전문가용 카메라가… 나를 맞이했다. 사내가 말했다.
“약간 비스듬히 서서, 편하게 저를 보세요. 기왕이면 미소 짓는 게 좋습니다. 자, 웃어보세요.”
사내의 웃어보라는 말이 우스워 나도 모르게 웃었다.
“좋습니다. 그럼 (찰칵 찰칵 찰칵)”
떨어져 있는 아내가 자기 스마트폰으로 우리의 촬영 장면을 찍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부담스러워‘그러지 말라!’는 뜻을 내 눈짓으로 전했다. 아내가 알아채고는 스마트폰을 내렸다. 잠시 후 사내가 다시 카메라를 들며 말했다.
“두 분이 모처럼 방문하셨는데 여기 같이 서 보세요.”
아내가 웃으며 내 옆으로 왔다. 우리 부부는 빛들의 사정거리 안에서 함께하기 시작했다.
“편하게들 저를 보세요. 미소 짓는 게 좋습니다. 자, 웃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