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우려가 들어맞았다. 아내가 살인진드기에 물린 것이다.

 

뭐에 집착하면 끝을 보는 아내의 성질머리가 자초한 일이다. K는 진작부터 아내한테살인진드기를 경고했다. TV에서살인진드기에 물려 사망한 농부뉴스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보. 이제 그만 풀 뽑아. 밭에 난 풀도 아니고 밭 가장자리에 난 풀을 뭐하러 뽑는 거야. 그러다가, 풀에 있는 살인진드기에 물리면 큰일 난다고!”

당신도 참. 이 풀들이 기승을 부려 밭의 작물들까지 넘보려하는데 어떻게 내버려 두냐고? 그리고 내가 긴소매남방 차림에 장화 신고 면장갑까지 꼈는데 무슨 진드기 걱정이야?”

아내는 그러면서 쉬지도 않고 밭 가장자리의 풀들을 뽑았다. 하는 수 없이, 그런 아내를 따라 함께 풀을 뽑아야 하지만 K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혈압 환자라 땡볕에 혈압이 오를까 겁나는 데다가, 아무래도 무성한 풀숲에 살인진드기가 틀림없이 있을 거란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어정거리고 서 있는 남편의 처지를 아내가 파악하고는 한 마디로 정리했다.

당신은 그냥 나무 그늘에서 쉬어요.”

얼마나 고마운 아내인가. 그러나 이어지는 한 마디가 K를 분노케 했다.

겁은 많아서.”

, 어쩌고 저째?!’K는 빽 소리 지르려다가 참았다. 노후로 접어들면서 아내 부아를 돋우었다가는 후유중이 만만치 않다는 걸 충분히 겪었기 때문이다. 우선 밥상에 오르는 반찬들부터 한심한 상태가 된다. ‘참자.’마음먹으며 K는 땡볕에 쭈그리고 앉아 풀 뽑는 아내를 다시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랬는데 사흘 후 아내는 결국 살인진드기에 물리고 만 거다.

 

그 놈이 아내의 등 한복판에서 발견되기는, 밭에서 집으로 돌아온 늦은 저녁시간이었다. K보다 먼저 땀에 젖은 몸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간 아내가 얼마 안 돼 심각한 표정으로 거실로 나와, 화장지로 잡은 무언가를 내보이며 이랬다.

여보, 이거 아무래도 진드기 같아. 당신이 확인해 줘.”

K는 떨리는 가슴으로 돋보기안경을 찾아 쓴 뒤, 아내가 건넨 화장지로 잡은 무엇을 살폈다. 둥글고 납작한 몸체에 좌우 네 개씩 도합 여덟 개의 작은 발들. 진드기가 맞았다. 좁쌀 두 배쯤 되는 크기로 납작하게 죽어 있었다. 아내가 샤워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알몸으로 서서 말했다.

몸을 물에 씻는데 등 한가운데에 뭔가 붙어 있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손을 뒤로 해서 화장지로 그것을 훔쳤더니만

당신 등 좀 봐야겠다.”

과연 아내 등허리에 좁쌀만 한 빨간 자국이 나 있었다. 그 놈이 피를 빨다가 만 자국이었다.

어때? 여기가 아프거나 가렵거나 해?”

잘 모르겠어.”

K는 즉시 스마트폰으로 살인진드기를 검색했다. 그 결과 몇 가지를 알았다.

첫째, ‘살인진드기란 중증 열성 혈소판 증후군(SFTS)이란 바이러스를 보유한 진드기다. 이런 진드기는 0.4%, 1000 마리 당 4 마리 정도이다.

둘째, 살인진드기에 피가 빨리는 과정에서 SFTS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1주에서 2주의 잠복기를 거쳐 발열이나, 구토, 설사, 복통, 피로감, 림프샘 부기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주로 노약자가 당한다.

셋째, 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K는 인터넷 검색 결과를 요약해서 아내한테 전하며 말했다.

살인진드기일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데다가 주로 노약자가 당한다니까 큰 걱정은 안 되는데어떡할까?”

그 뜻은 이제라도 병원에 가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일과시간이 지났으므로 개인병원은 안 될 것 같고 종합병원의 응급실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치료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응급실에 간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리고 응급실 담당은 경험이 일천한 인턴의사가 대부분이라는데 괜히 엉뚱한 응급조치를 할지도 모른다. 2차 의료사고라는 게 나는 거다. K는 짧은 순간이지만 머릿속으로 길고 복잡한 생각들에 휘말렸다. 그런데 아내가 다행히도 남편의 복잡다단한 생각들을 한 마디로 처리해주었다.

괜찮을 것 같아.”

하긴 환갑 나이가 된 아내이지만 건강에 관한 한 문제가 없는 탄탄한 신체의 소유자다. 소화불량이 잦은 데다 고혈압 환자인 남편보다 훨씬 건강하다. K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치료제도 아직 없다니 일단 지켜보자고. 물론 별일이야 없겠지만 말이야.”

무더운 날씨라 부부는 각방을 쓴다. 아내 혼자 안방에서 자고 K는 거실에서 잔다. 그 날 밤 K는 거실 이부자리에 누워만일 아내가 잘못되면이란 불길한 가정 아래 이 생각 저 생각에 엎치락뒤치락거렸다. ‘며느리가 손주를 낳으면 밭농사는 나한테 맡기고 자기는 손주 보는 일로 노후를 보내겠다 했는데’‘아들은 장가가 살지만,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는 딸애는 아직 시집가지 못했는데’‘그나저나 당장 빨래며 밥상 차리는 일은 어떡하지?’

그러다가 K는 황당해졌다. 아내가 자는 안방 쪽에서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드르렁 드르르렁, 드렁드렁 드르렁!”

 

한 달이 지났다.

뭔가에 집착하면 끝을 보는 아내의 성질머리라니. 500평 밭 가의 그 무성한 풀들을 모조리 뽑아놓고야 만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풀을 뽑아서 맨흙이 드러난 자리에 어디서 구해왔는지 화초들을 심는 작업에 들어갔다. ‘사시사철 꽃들이 피는 아름다운 농장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의 실천이다.

여보!”

아내가 화초를 심다 말고 K를 불렀다. 나무 그늘에 앉아 쉬던 K는 응답 대신 아내를 바라보았다. 따가운 땡볕 아래 아내가 오른손에는 호미를, 왼손에는 화초를 든 채 이어서 말했다. 정확히는 명령했다.

당신도 같이 화초를 심어야겠어. 오늘 중으로 심어야 화초가 살거든.”

K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고혈압 환자인 거 잊었어? 땡볕이라 안 돼!”

차 트렁크에 내 양산 하나 있어. 그거 쓰고 일해!”

K는 순간 속으로살인진드기들이 저런 악녀를 놔두고 뭐하는 거야?’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아니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아암 그렇고말고.’반성하며 주차돼 있는 밭 가장자리로 발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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