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 길로 외갓집을 나왔다. 먼동이 트는 새벽에 동네 안 길이 아닌, 뒷동산 오솔길로 해서 동네를 떠났다. 외할머니 말고는 아무도 그의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전 날 밤 저지른 일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전개될 듯싶은 불길한 예감에 밤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그렇듯 춘천으로 새벽같이 달아나는 방법을 택했다. 개학은 아직도 열흘이나 남았다. 뒷동산을 넘을 때 그는 왠지 ‘외갓집에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잠깐 멈춰 서서 외갓집을 비롯한 희망리 온 동네를 돌아보았다.
‘“꼬끼요오!”
닭울음소리들이 여기저기 나며, 굴뚝들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밥 짓는 연기들. 초가집들 사이로 드문드문 기와집이 있는 그 평온한 풍경.
그의 황급한 처지와 비교되던 평온한 풍경이라니…….
그 후 그는 ‘왠지 외갓집에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장장 45년간이나 발길을 끊었
다.
< 무심 이병욱의 단편소설 '함정'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