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일이다. 어느 선생님이 우리들 공책을 다 걷은 뒤 이틀 후 되돌려주었다. 공책마다 검사 도장이 한 곳씩 다 찍혀 있었는데 선생님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똑같은 검사 도장이 아니다. 공책에 필기를 얼마나 정성껏, 깨끗하게 잘했느냐에 따라 제 각기 다르게 검사 도장을 찍었다. 어떻게 다르게 찍었냐고? 그런 나만의 비밀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학급에서 공책 필기를 아주 잘하는 친구와 그렇지 못한 친구의 공책을 나란히 펴놓고 어떻게, 찍힌 검사 도장이 다른지 비교해 봤다. 과연 검사 도장이 달랐다. 필기 잘하는 친구의 공책에 찍힌 검사 도장이 더 진했다. ‘선생님이, 공책 필기를 잘할수록 검사 도장을 진하게 찍는다고 쉬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또 다른 친구의 공책에는 검사 도장이 진하게 찍혀 있는데도 필기 상태가 엉망이었던 거다. 그런 친구들이 여럿 나타났다. 우리는 혼란에 빠졌다. 그러자 실장이 소리쳤다.

분명히, 검사 도장이 진하게 찍혔느냐 여부가 비밀의 열쇠가 아니다. 다른 비밀의 열쇠가 있다. 그걸 찾아라!”

그 결과 검사 도장이 바르게 찍혔느냐가 비밀의 열쇠다.’ ‘아니다, 검사 도장이 공책의 상단부에 찍혔느냐, 하단부에 찍혔느냐가 비밀의 열쇠다.’등등 여러 가지 의견이 속출했는데 그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었다. 왜냐면, 이게 비밀의 열쇠라고 확정 지으려는 순간 영락없이 예외의 경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비밀의 열쇠를 찾다가 지친 우리는 결국 그 선생님한테 직접 여쭈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실장이 대표로서 나섰다.

선생님.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검사 도장이 공책에 어떻게 찍혀 있어야, 필기를 잘한 건가요?”

선생님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건…… 나만의 비밀이다."

세월이 오래 흐른 후 나는 깨달았다. ‘애당초 비밀의 열쇠 따위는 없었다.’

바쁜 선생님이 어떻게 수많은 학생들의 공책 필기 상태를 일일이 다 보며 검사할 수 있는가. 그냥, 편하게 검사 도장을 찍고 공책들을 되돌려준 것이다. 선생님이 공책 필기 상태를 보며 검사 도장을 제 각기 다르게 찍었다.’고 한 말은 우리들이 공책 필기에 정성을 다하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둔 허언이었다.

 

어젯밤 외출했다가 귀가하는 길에 강냉이 튀기는 장수가 남겨놓은 물건들을 보았다. 튀겨놓은 강냉이 여러 포대와 튀기는 기계까지 한곳에 모아놓고 넓은 비닐로 꽁꽁 둘러싸 묵었는데, 그 장소가 외지고 어둑했다. 양심이 불량한 자들의 손을 탈지도 몰랐다. 그 때문일까, 강냉이 장수가 매직글씨로 쓴 경고판이 한 옆에 있었다. 종이상자의 한 면을 활용한 경고판인데 그 내용을 고대로 옮긴다.

“CCTV가 가동중임.”

순간 나는 중학교 때 공책 필기 상태에 따른 검사 도장 찍기사건이 떠올랐다. 하지만 양심 불량의 작자들한테 그 경고판이 엄하게 작용하길 바라며 밤길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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