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꾹 뻐꾹 뻐꾹……

방산 마을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용이는 백저포로 갈아입고 조건을 쓴 뒤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 한복판에 깔아놓은 돗자리에 앉아, 품안의 사발을 꺼내놓았다. 이 사발은 명문을 새길 대상으로 선정된 두 점 중 하나다. 어제까지 용이는 이틀 간, 선정된 사발 두 점의 명문 새기기에 매달렸다. 한 점은 완료했으나 다른 한 점은지금 품에서 꺼내놓은 이 사발은 반쯤 하고 말았다. 왜냐면 이 사발의 굽에 새겨야하는 마지막 명문이 용이로서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서, 지친 몸과 정신으로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관 스님이 한지에 붓글씨로 적어 인편에 보내주신 명문이다.

사실, 명문을 새길 사발 두 점을 선정하는 데만도 사흘이 걸렸다. 초벌구이를 마친, 가마에서 나온 백여 점의 사발들을 하나하나 살핀 끝에 스무 점을 일단 추렸고 그 중 명문을 새길 두 점을 다시 추린 것이다. 명문을 새기는 대상에서 제외된 열여덟 점의 사발도 나중에 함께 유약을 칠해 가마에 넣어 재벌구이를 거치면, 빛나는 백자사발이 스무 점이나 탄생한다.

지금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아들은 재벌구이를 준비하느라 가마에 가 있고 아내는 마을에서 혼자 사는 가난한 노인네 집에 가 있다. 쌀도 퍼다 드리고 부엌일도 돕고 그러는 것 같다.

화사하게 떨어지는 봄 햇살들을 한 번 담아보려는 것같이 용이는 눈앞의 사발을 두 손으로 조용히 쳐들어보았다. 무늬 하나 없기에 오히려 수많은 무늬가 담겨 있는 듯 여겨지는 깊은 담백함과…… 세속의 모든 욕심들이 다 씻겨나가고 따듯한 마음 하나 남은 듯한 순백함의 결정체였다.

사발의 둥근 굽이 보이게 뒤집어서 내려놓았다. 방산 사기장의 명성을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남기는 작업에 들어갈 참이다. 용이는 떨리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가라앉혔다. 이윽고 조각칼로 천천히 그 굽에 한 자 한 자 명문을 새겨나갔다.

辛未四月日防山砂器匠 沈竜 同發願比丘 信寬

열아홉 자를 다 새기고 나자 눈부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갑자기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용이는 그 까닭을 좀체 헤아리기 힘들었다.

 

 

<참조> ‘이성계 발원 사리갖춤’ /서성호

고려시대 장인의 지위와 사기장 심룡/ 홍영의

양구 백자와 심룡 콘텐츠 전략 /최선일,한봉석

  <사진출처(구글)> 금강산의 가을 /김효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