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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모(某)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급을 담임할 때다.
2학기말 시험이 끝나며 사실상 졸업식만 남은 12월의 어느 날, 실장 녀석을 찾을 일이 생겼다. 청소시간이라 녀석을 교무실로 호출해도 되지만 왠지 내가 교실로 가 녀석을 만나보고 싶었다.
교실 쪽으로 가다가 마침 복도에 있는 녀석을 보았다. 내가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 기막힌 일이 생겼다. 녀석이‘넷!’하고 답하는 순간 그 입에서 담배연기까지 허옇게 나던 것이다. 짐작이 갔다. 마지막 시험도 끝나 들뜬 분위기의 복도 한쪽에 서서 막 담배를 피우는 순간 내가 나타나 이름을 부른 거다.
‘스모킹 건(smoking gun)’이란 표현을 볼 때마다 나는 그 때 일을 떠올린다.
‘스모킹 건(smoking gun)’을 직역하면 ‘연기 나는 총’이란 뜻으로 범죄 또는 특정 행위나 현상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탄환이 발사된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포착하는 순간,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살해범으로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그 시절 학생의 교내 흡연은 유기정학이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나는 이런 판단을 했다. ‘졸업을 코앞에 뒀는데 이제 와서 어떡하랴. 모른 척하자.’
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녀석의 눈길을 피해 다른 데를 보며 뭐라고 용건을 말하고 교무실로 돌아왔다.
어언 50대 나이가 됐을 그 녀석. 지금도 담배를 피울까? 건강에 절대 안 좋다며 수시로 TV에서 금연 광고를 내보내는 시대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