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가을, 흑백텔레비전이 분수에 맞지 않는 이상한 짓을 시작했다.

정시 뉴스 직전마다 뜨던대통령 말씀이란 장면부터 이상했다. 무궁화무늬로 대통령 말씀을 에워쌌지만 무궁화의 고운 빛깔이 나타나지 못하는 까닭에, 질 낮은 흑백 전단처럼 보였다. 그런 장면으로 대통령 말씀이 게시되는 거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여 가수가 등장해서조국찬가를 부르는 장면도 이상했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두 팔까지 흔들며 힘차게 노래 부르지만 빨강 파랑이 아닌 흑백 태극이라, 왠지 음울해 보였다.

 

< 무심 이병욱의 단편소설  '노려보기 시작했다'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