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알았는데 친구는 법률구조공단에 취직한 뒤 결혼한 것이다.

나는 그 날 만난 서울 여자와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 헤어졌고, 4년 뒤 고향 춘천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내게 배필 인연은 먼 데 있지 않았다. 나고 자란 고향에 있었다. 친구보다 결혼이 4년 늦었기에 내 첫 아이가 친구 첫 아이보다 네 살 어리게 되었다.

친구를 다시 만난 건 1992년이다. 내가 택지 분양권을 샀는데, 뒤늦게 분쟁의 소지가 많은 문서라는 사실을 알고는 법적 조언을 들으려 친구를 만난 것이다. 친구가 조언하는 대로 그 분양권을 판 노인을 다시 만나 계약서를 보완하고서야 가까스로 안심이 되었다.

분양권을 다른 사람들에게 웃돈 받고 팔려 했지만 이미 부동산 경기가 식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하게 됐는데 그 때 아내가 말했다.

고민할 게 뭐 있어요? 이참에 우리도 집 지읍시다.”

맞는 말이었다. 택지 분양권을 샀으니 그 택지에 집을 지으면 될 일이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집을 짓고 살게 된 연유는 그러했다. 1996818일 내 명패가 달린 단독주택에 입주했으니, 돌이켜보면 감격스러운 일이었는데 직장 일이 너무 고된 즈음이라 감격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다.

친구 역시 그 즈음에 이웃한 동네의 택지에 집을 지었다. 이웃해 살게 되면서 가끔씩 만날 만도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각자의 직장이 달랐던 탓도 있을 게고, 내성적인 성격들이라 먼저 연락을 하지 못한 까닭도 있지 않았을까.

 

어제 아침 불현 듯이러다가는 친구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살다가 이 세상을 뜰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친구가 반가운 목소리로 나를 맞았다. 풍물시장의 한 식당에서 오후 5시 반에 만나 저녁 겸 술 한 잔 하자는 약속이 됐다.

겨울이라 오후 5시를 넘자 금세 어둑해졌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나는 그 식당 부근에 서서 친구를 기다렸다. 혼자 식당에 앉아 있는 것처럼 사람이 궁상맞아 보이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30분이 되자 어둠 속에서 친구가 나타났다. 마치 과거라는 시간 속에서 나타나듯 말이다.

그 새 머리도 세어 있는 친구.

풍물시장은 공지천 가에 조성돼 있다. 1961년경 하꼬방 많던 공지천 가에서 아버지 곁에서 조우했던 어린애들이…… 주위에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서 이제는 그 옛날의 공지천 풍경을 찾아보기 힘든 풍물시장의 한 식당에 머리들이 허옇게 센 모습들로 마주앉았다. 술잔을 권하며 밀린 사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친구나 나나, 아버지는 물론이고 어머니도 세상을 떴다.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문득 자기 스마트 폰의 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춘천중학교 3학년 2반 봄 소풍 때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간단치 않은 감회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언뜻 평화롭게 보이는 내 모습이지만 실상은 심적 갈등이 많았던 기억이 났다. 나는 소설 쓰기를 전공으로 하지만 이 사진에 관한 얘기만은 마음 편하게,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수필로 쓰고 싶어졌다.

오늘 새벽, 컴퓨터를 켜 한글 화면을 띄운 뒤 글을 시작했다.

어제 오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왜 오랜이란 수식이 필요한지 이유부터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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