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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시 폐지가 확정되었다. 사실 그 놈의 사시 때문에 이 땅의 멀쩡한 청춘들이 얼마나 많이 상처받고 폐인이 되었나? 범죄의 여왕이란 영화는 그런 폐인이 급기야는 살인을 저지르면서 삶의 나락에 떨어짐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자식 앞에서는 죽음도 무릅쓰는 이 땅의 어머니 상을 구현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403호 ‘강하준(허정도)’이 보여주는 ‘사시 제도의 폐해’, 그 무게감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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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도’는 특별한 생김의 배우는 아니었다. 극히 평범한 인물이어서 만일 골목길에서 마주쳤다 해도 배우 허정도임을 모르고 그냥 지나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표정 연기는 일품이었다. 나는 무표정이 표정 연기 이상의 감명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사시 공부 하는 늙은 청년의 절망을 허정도처럼 잘 보여주는 배우가 어디 있을까! 초점을 잃은 듯 상대를 보던 그의 무표정 연기는 겨울바람 부는 허허벌판의 허수아비 그 이상이었다.
‘범죄의 여왕’은 비교적 잘 만든 영화이다. 모든 배우들이 저마다 맡은 역에 최선을 다한 결과라 여겨지는데 나는 특히 403호 강하준 역의 ‘허정도’에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