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는 예술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에게 공감을 주고 나아가 감명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맹인임에도 아무 불편 없이 성큼성큼 잘 걸어 다닌다면 관객들의 실망이 클 것이다. 비록 극 속의 맹인이라도 배우는 그 역을 맡는 순간부터 모든 관객들이 맹인으로 착각하도록 연기할 의무를 지니며, 이것이 예술작품에서 리얼리티가 소중하게 대접받는 까닭이다.

 

 

 

 

 

 

그런데 우디 앨런은 로마 위드 러브라는 영화에서 이 리얼리티를 아무렇지도 않게 위반한다. 목욕할 때만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장의사를 오페라 무대에 등장시켜, 똑같은 목욕 환경 속에서 노래 부르도록 함으로써 청중들의 환호를 받게 만든다는 설정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생겨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샤워기에서 요란하게 쏟아지는 물소리와 함께 부르는 노래가그 소란스러울 잡음이 어찌 청중들에게 감명을 주는 노래로 환호 받을 수 있을까?

 

  평범한 직장인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하룻밤 새에 유명인이 되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난데없이 등장한 창녀를 자기 친척들에게 결혼할 예비 신부라고 소개하고 다니는 기막힌 상황이 어디 있을까?

 

사랑에 빠진 순간 당신이 캐스팅 되었다는 감독의 전화가 오자 그 자리에서 일초도 망설임 없이 남자를 떠나는 여배우가 어디 있을까?

 

 

 

 

 

대화할 때 통역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 사돈 간(우드 앨런과 장의사)인데 어느 순간부터 통역자 없이 얘기를 주고받으며 사건을 전개하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관객 누구도 우디 앨런의 이런 리얼리티의 결례를 문제 삼지 않는다. 왜냐고? 애당초 이 영화가 시작될 때 등장한 교통경찰이 이제부터 로마에서 갖가지 사랑 얘기가 벌어진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날 때 역시 누군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나서서 이제 얘기들이 마감되었다고 친절하게 밝혔으니 --------애당초 우디 앨런은 리얼리티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한바탕 사랑 얘기 좀 하겠다고 관객들에게 양해부터 구한 것이다.

 

  하긴 우리가 극장을 찾는 까닭은 잠시라도 현실(리얼리티)을 벗어나기 위함이 아닐까. 굳이 극장에서까지 리얼리티를 만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우디 앨런은 마음 놓고 장난했다. 리얼리티를 무시한 얘기들을 보여줌으로써 ------또 다른 의미의 리얼리티를 깨닫게 했다.

 

 

 

 

 

 

청춘 남녀의 사랑은 사실, 수시로 무너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누구나 하루아침에 유명 가수가 되는 것과 같은, 황당한 명예욕을 감추고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몸으로 활개치고 싶은 욕망이 내게 숨어 있지 않을까? 우리가 겉으로는 고상한 대화를 나누지만 그 순간 더럽고 음험한 속셈이 숨어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런 장면에서 분명히 등장인물이지만 수시로 유령처럼 나타나 그 속셈을 일러주는 알렉 볼드윈. 이 또한 철저한 리얼리티의 파괴 장면이자, 우리 모두의 가슴 속을 뜨끔하게 만든다.)

 

  우디 앨런이라는 괴짜 영화감독에 관한 신문 기사(대개 여자 문제)는 몇 번 보았으나 실제 그의 영화를 감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리얼리티가 무시되는 순간 또 다른 의미의 리얼리티를 대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번 영화로 깨달았다.

 

우디 앨런은 영화로 장난을 치지만 그 장난은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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