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도내 여러 지방의 학교에서 근무했다. 동해안의 작은 읍에 있는 학교부터 영서지방의 대도시에 있는 학교까지, 일곱 학교나 된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어느 지방의 학생들이든지 첫눈이 내리는 날 연인들이 만나는 그곳을 한결같이 얘기하더라는 거다. ‘그곳은 그 지방에 있는 바닷가이거나, 강가 제방 길이었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멋진가. 첫눈이 흰 꽃잎들처럼 날리는 바닷가나 강가 제방 길에서 만난 연인들의 모습. 둘이 눈길을 걸어가는 장면…….

그래서 첫눈 내리는 날은 수업하기 무척 힘들었다. 학생들이 오늘 같은 날은 그곳에서 연인들이 많이 만날 텐데하는 생각들로 뒤숭숭해 앉아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첫눈 내리는 날 연인들이 바닷가나 호숫가에서 데이트하고 있을까?”

한심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궁금증을 품다. 그래서 첫눈만 내리면 눈을 맞아가며 그곳에 부리나케 가 보았다. 몇 번을 가 보았다. 이제 결론을 말한다.

첫눈 내리는 날, 그곳에는 연인들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그곳에는 나 혼자만 와 있기도 했다. 연인들은커녕 사람 비슷한 존재도 안 보이는데 나 혼자 쓰잘데없이 눈을 맞는 처량함 내지 머쓱함이란, 경험해 보지 않고는 절대 모를 것이다.

 

내가 퇴직한 뒤에도, 해마다 겨울이면 첫눈이 내린다. 물론 이제는 첫눈 할아비가 내린다 해도 그곳에 가 보지 않는다. 그런데 학교에 재직할 때 학생들은 왜, ‘첫눈 내리는 날 그곳에서 만나는 연인들의 환상을 가졌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답이 나왔다. 학생들은 학교와 집만 오가며 공부해야하는 숨 막힐 것 같은 생활에 그런 아름다운 환상이라도 갖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힘들여 써야 하는 손 편지 대신 쉽게 휴대폰으로 문자를 쳐 보낼 수 있는 요즈음 같은 시대에도 첫눈 내리는 날 그곳에 가면의 환상이 여전히 학생들에게 남아 있을까? 이제 나는 다른 궁금한 게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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