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따로 있다. 서양 가수들은‘FOR THE GOOD TIMES'를 좋아한다. 원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노래였지만 엘비스플레스리부터 시작해서 알그린, 페리코모, 앤디윌리암스, 케니로저스 등도 불렀다. 각자 대표곡이 있지만 'FOR THE GOOD TIMES'가 워낙 좋은 노래라 실례를 무릅쓰고 마치 ‘FOR THE GOOD TIMES' 잘 부르기 경연대회라도 연 듯 했다. 그 중 특히 알그린이 소울 창법으로 부른 'FOR THE GOOD TIMES'가 일품이다. 어느 한 시절, 서울의 나이트크럽에서 조명을 어둡게 한 뒤 알그린의 이 노래를 틀어주면 처음 만난 남녀라도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게 되곤 했다는 전설이 있다.

나는, 우리나라 가수들이 좋아하는 노래 중 첫 번째를 문밖에 있는 그대라고 생각한다. 원래 박강성 가수가 발표했는데 워낙 괜찮은 노래다보니 이런저런 가수들도 불렀다. 유명가수들보다 무명가수들이 더 많이 불렀다는 특이점이 있다.

노랫말은 이렇다.

 

그대 사랑 했던 건 오래전의 얘기지/ 노을처럼 피어나 가슴 태우던 사랑

그대 떠나가던 밤 모두 잊으라시며/ 마지막 눈길마저 외면하던 사람이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오늘은 거기서 울지만

그렇게 버려둔 내 마음 속에/ 어떻게 사랑이 남아요

한번 떠난 사랑은 내 마음엔 없어요/ 추억도 내겐 없어요

문밖에 있는 그대 눈물을 거둬요/ 가슴 아픈 사랑은 이제는 잊어요

이제 분석해 본다.

'그대 사랑했던 건 오래 전의 얘기지'라는 첫 부분부터 흡인력이 대단하다. 한 때 사랑했지만 이제는 결별한 사이라는 것을 이처럼 간단명료하게 잘 나타낼 수가 없다. ​

노을처럼 피어나 가슴 태우던 사랑이란 부분은 '얘기'로 남은 그 사랑의 시작과 절정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수줍던 사랑이 마침내는 뜨겁게 바뀌던 것을 회상케 한다.

그런데 이 뜨거운 사랑의 불길이 사그라든다. '그대 떠나가던 밤이란 구절이 그것이다. 황홀한 노을빛깔의 저녁에서 어두운 밤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변화에 맞추어, 사랑의 시작과 종말을 시각적으로 잘 그렸다.

'문밖에 있는 그대'라는 구절은 ‘결별한 두 연인의 현재 만남’장면을 상징화했다. 상징은 고도의 수사법이지만 실제를 바탕으로 한다. 태극기를 대한민국의 상징이라고 할 때는 바람에 펄럭일 수 있는 실제 태극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문밖에 있는 그대'라는 장면은 대문이 집채와 일정 거리를 둔 단독주택에서나 벌어질 실제 상황이다. 그래야 '문밖에 있는 그대에게 화자(話者)가 거리를 두고 제대로 말할 수 있다. 만일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제대로 대화 나누기도 어렵다. 아파트란 주택구조는 실내와 바깥이 얇은 문을 사이로 접하기 때문이다.한 번 떠난 사랑이 십여 센티 너비의 현관문 앞에 와서 울고 있다면 화자는 얼마나 부담스럽고, 무서울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주민들이 그 상황을 목격했다면 불안에 떤다. 결국불청객을 처리해 달라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연락하거나, 그도 여의치 않다면 경찰에 연락해무단으로 남의 아파트에 쳐들어가려는 괴한을 체포해 달라고 요청한다.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대가 그런 부담스런 상황을 야기하지 않도록, 일정한거리를 둔 단독주택에서의 대문 밖이어야 한다.

이런거리'닫힌 대문 밖에 서 있는 그대의 모습을 화자가 슬그머니 창문 틈으로 내다볼 수 있는 거리.

최소한 5미터는 돼야 한다. 물론 창문 틈으로 내다보아야 하는데 만일 창문을 활짝 열고 내다보거나, 대문까지 걸어가 열고서 마주본다면 그건 가슴 아픈 사랑이 아니라 법률적 고소를 각오한 사건의 시작이다.

그렇다.‘문밖에 있는 그대라는 상황은 떠난 연인이 어느 날 대문 앞까지 찾아왔다가, 화자가 끝내 대문을 열어주지 않자 흐느끼면서 발걸음을 돌리는평화로운 거리를 상정한다.

그런 거리는 사실 정서적 거리이다.

가수 김종찬이 부르는사랑이 저만치 가네라는 노래의 저만치’와 같은 거리다. 김소월이산유화란 시에서 노래한산에 산에 사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저만치보다는 아무래도 가깝다.

그런 거리를 두고 있을 때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려야 한다. 초라한 꼴로 찾아온 그대가 혹 눈물을 흘리더라도 빗물인 것처럼 보여, 자칫 궁상맞은 꼴로 보일 참상을 방지해줄 테니까.

지난날의 사랑을 되찾고자 자존심 다 버리고 찾아온 그대는 물론 가슴 아픈 존재다. 그럼 화자는 행복할까? 화자 역시 그대만큼이나 가슴 아프다. 이 노래의 절정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렇게 버려둔 내 마음 속에/ 어떻게 사랑이 남아요하는 절정 부분의 절규가 입증한다.

그대나 화자나 모두 울고 있는 것이다. 슬픈 사랑의 절정이다.

 

그렇게 함께 가슴 아프다면 화자가 문을 열고 나가 그대를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요?”

하는 우문(愚問)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문을 열고 나가기에는, 그대와의 사랑을 되찾기에는 모든 게 너무나 달라져버렸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낡은 바바리코트 차림으로 찾아와 대문 앞에 서 있는 초라한 사내. 그래도 대문은 끝내 열리지 않는다. 아니, 열리지 못한다. 왜냐면…… 그 대문은 닫힌 마음의 문이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pblWJ22JZ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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