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원래 대학교 4학년 때인 1973년 5월에 쓴 것이다. 당시 이 작품을 '그리고'문학회지(3집)에 실을 때 출판비를 대는 학예부장 녀석이 벌벌 떨며 내게 말했다.

이 작품 때문에 나까지 어디 끌려가 고생하는 거 아니니? 내용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거든.”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치하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철저히 짓밟혔다고 기록되는 시대다. 학예부장 녀석이 벌벌 떨던 게, 이제야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자유수호를 위한다고 참전한 월남전이 막바지에 달한 그 즈음에 반전사상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소설을 떡하니 문학회지에 발표하겠다니 말이다. 잘못되면 모처에 끌려가 고생바가지를 쓸 것 같은 공포감에 그 녀석은 내가 이 작품의 원고를 알아서 스스로 철회하기를 바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원체 무심한 성격의 나는 이렇게 답했다.

괜찮아. 실어.”

    

솔직히, 지방 대학의 문학회지에 이 작품이 실렸기 망정이지, 만일 서울 한복판에 있는 대학교의 문학회지나 교지에 실렸더라면 분명 문제를 일으켰고 죄없는 학예부장 녀석과 나는 함께 경쳤을 테다.

 

오랜 세월이 지났다.

내가 퇴직 후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한 친구가 자네가 대학 시절에 글을 잘 썼다는데 좀 보여줄 수 없냐?’고 부탁했다. 그런 연유로 세상의 빛을 제대로 받게 된 소설이숨죽이는 갈대밭이다. 그 친구가 다 읽어보고는브라보!’라고 벅찬 감동을 한 줄 메일로 적어 보냈다. 현재 쓰는 소설들보다 몇 십 년 전 대학 시절의 이 소설이 훨씬 낫다는 전화통화를 나중에 했다. 놀란 나는 이번에는 모 시인께 보였다. 그분 역시 다 읽고 나서 친구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제목을 바꾸게. 다 좋은데 지금 제목은 어째 마음에 안 드네.”

초원의 빛이란 원제 대신 숨죽이는 갈대밭이란 제목으로 바뀐 연유다. 가깝게 지내는 봉명산인이란 분도 이 작품을 읽고 극찬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아들 또한 이 작품을 보고 아빠가 대학시절에 이렇게 소설을 잘 썼다니!’하고 감격했다.

 

그래서 올해 여름에 생애 처음으로 작품집을 낼 때 수록한 12편에 이 작품을 포함시킴은 물론이고 작품집의 표지 제목으로까지 삼았는데…… 생각만큼 독자들의 반응이 나오지 않아 왜 그럴까?’하고 나 혼자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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