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차는 홍천 외곽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쌀쌀한 바깥 날씨임에도 차 안은 덥다. 늦가을, 따가운 햇살 때문이다. 그는 버튼을 눌러 조수석 쪽 창을 반쯤 내렸다. 싸늘한 바깥바람이 차 안으로 밀려들면서 덥던 실내가 얼마 안 가 완화되었다.

 

춘천 집의 좁은 뒤란에서 당수를 수련하기는 편치 않았다. 특히 2단 옆차기처럼 일정 거리를 날아야 할 때는 담벼락과 집채 사이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동작해야 했다.

외갓집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뒷동산에, 큰 나무들 사이로 제법 널찍한 풀밭이 있어서 그곳을 도장 삼아 마음 놓고 활개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듯하게 자란 굵은 소나무를 하나 택해 새끼줄로 둘둘 감아놓으니 정권 치기나 손바닥을 날 세운 수도 치기를 연습하기도 제격이었다. 물론 싸움 상대의 머리 부분쯤이라 여기고서 발차기 하기도 좋았다.

시간을 늘려, 하루에 한 시간씩 뒷동산에서 당수 수련도 하고, ‘이번 방학 동안에 나머지 반을 다 떼자는 결심으로 챙겨온 두꺼운 ‘AW메들리영어 참고서도 다섯 페이지씩 진도를 나가고, 정말, 오랜만에 알차게 보내는 여름방학 같았다.

만일 춘천 집에 있었더라면 5남매가 함께 쓰던 그 좁은 방에서 누나나 동생들에 부대껴 영어 공부는커녕 뒤란에서 하는 당수 수련도 여의치 않았을 게다. 바로 밑에 동생 녀석이 형을 따라 자기도 당수 하겠다며 한참 성가시게 굴던 참이었으니까. 춘천 집의 형편을 생각한다면 방학 한 달간이라도 외가로 놀러오기는 아주 잘한 일이었다.

 

작은 동산이지만 제법 많은 나무들에다가, 수풀도 우거져 그의 당수 독학 광경은 웬만해서는 사람들 눈에 뜨일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일주일쯤 지났을 때 동네 아이 눈에 뜨이고 말았는데 결국 그날 밤 사건의 태동(胎動)이라 할 만하다.

그 아이는 소 먹일 꼴 베러 산에 올랐다가 난데없는 당수 수련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같은 또래라 동네 길에서 마주치면 눈짓인사는 나누던 사이였다.

야아, 대단하구나야!”

그 아이는 감탄하며 서 있었다. 앞발차기 동작을 하던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계속했는데, 언젠가는 동네 사람들 눈에 띌 거라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서너 번 더, 소나무에 새끼줄을 감아놓은 눈높이 위치를 겨냥해 앞발차기를 연습한 뒤 그는 비로소 그 아이를 제대로 보며 말했다.

왔어?”

그런 뒤 다시 몸을 움직여 2단 옆차기를 실시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당수 동작 중 가장 멋진 동작에, 그 아이는 입을 떡하니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같은 동작을 네 번이나 하자 금세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가 소맷자락으로 목덜미의 땀부터 닦을 때 그 아이가 감탄의 표정이 여전한 채 물었다.

니가 지금 한 게, 그 뭐야, 당수? 그런 기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그는 자기도 모르게 허구까지 술술 지어내고 말았다.

내가 도장에서 당수 배운 지 1년이 넘었어. 1단이지. , 여기 시골에서는 잘 모를 테지만 춘천 바닥에는 깡패새끼들이 득실거리거든. 그래서 그 새끼들이 돈을 달라고 까불면, 까짓 거, 내가 당수로 콱 조지는 거지. 몇 놈 잘 조졌지, 지금까지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방학 때도 늘 당수를 연마해 두어야 해.”

 

돌이켜보면 그는 당시에 이미 소설가 기질을 보였던 게 아닐까? 환갑 가까운 나이에 모 문학지에 소설 두 편을 발표하는 둥, 뒤늦게 소설가의 면모를 갖춰 가고 있다.

아내가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구한다는 전도차원에서 성당에 데려가려고 할 때마다 그는 당신, 내가 그리도 한가해 보여? , 요즈음 작품을 구상하느라 머릿속이 여간 바쁜 게 아냐!’하는 말로써 사절한다. 그런 뒤 속으로 정말, 내가 소설가로 등단하지 않았더라면 애먹을 뻔했다.’고 안심한다. 성당이 싫은 게 아니라 특정 공간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 게, 생각만 해도 못 견디겠는 거다. 교직에 재직할 때에도 그는 강습이라든지 교장의 특별 훈화같이 꼼짝달싹 못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을 아주 못 견뎌했다. 그 때문일까, 승진과는 거리가 먼 평교사로 퇴직하고 말았다. 그의 잠재의식 속에, 한창 자랄 때 그 좁은 방 한 칸에서 누나나 형제들과 함께 지내느라 몹시 힘들었던 경험이 역력하게 남아서 빚어진 일들이 아닐까?

지금 차는 홍천과 횡성 사이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삼마치재 터널이다.

 

산에서 당수를 연습하다가 동네 아이한테 목격된 다음 날 밤이다.

달빛 한 점 없이 어두운 그 밤에 동네의 또래 애들 대여섯이 그를 찾아 왔다. 늘 열려 있는 사립문이니 그냥 마당 한복판으로 들어와, 방안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는 그를 부른 것이다.

보옹길아! 보옹길아!”

봉길(鳳吉)이란 다소 촌스런 이름은 그의 아명인데 춘천 집과 여기 충청도 외가에서 쓰이고 있다. 물론 친척 어른들도 그리 부른다. 족보의 항렬을 따라 점잖게 지은 준연(俊淵)’이란 호적상의 이름은 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식적인 공간에서 쓰인다.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보던 만화책을 놓고 일어나려는데 외할머니가 먼저 방문 열고 내다보며 말했다.

우리 봉길이는 왜 찾냐?”

집단으로 위해하려는가 싶어 카랑카랑하게 묻는 말이다. 그러자 동네 애들 중 어제 낮의 그 아이가 방에서 새나오는 백열등 불빛에 제 모습을 드러내며 공손한 어조로 답했다.

물고기 잡으러 같이 가려구야.”

우리 봉길이는…… 공부해야 되는데?”

그런 할머니가 민망스럽게도 그가 실마루로 나서며 말했다.

할머니. 공부는 낮에 다 했어. 쟤네들을 따라가서 물고기 잡는 것 좀 구경하다가 올게.”

그러잖아도 그는 외삼촌의 헌 만화책이나 들척이며 밤 시간을 보내느라 따분했다.

개구리들이 사방에서 와글와글 시끄런 논두렁길.

한 아이가 막대 끝에 낡은 천을 감아 만든 횃불을 쳐들어 앞길을 밝히는 가운데 동네 애들과 그는 행렬을 이루어 강으로 향했다. 어제 낮의 그 아이가 이제 강가에 가면 봉길이가 당수를 보여줄 테니까 잘들 보라구야!’ 연실 떠들었다.

몇 년째 여름방학 때마다 보는 얼굴들이지만 함께 어울리기는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이 날 밤은 신고식이 치러지는 순간이었다. ‘당수 한 번 제대로 보여주자는 생각에 그의 손아귀에 땀이 배었다.

강물이 강바닥의 자갈들에 부딪히며 흐르는 절절절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강가에 도착했다.

횃불이 짙은 어둠을 간신히 밀어내며 만들어낸 일정 부분의 모래밭 공간. 한복판에 그가 대련 자세로 서고, 동네 애들은 넉넉한 거리로 삥 둘러앉았다. 그는 마침내 야압!’ 기합소리를 내며 2단 옆차기를 시연했다. 발이 빠지는 모래밭이라 동작하기가 불편했지만 혼신을 다 해 멋지게 해냈다.

와하!”

동네 애들이 탄성을 질렀다. 우쭐해진 그는 한 번 더 2단 옆차기를 해 보이곤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다른 동작들도 있지만, 이쯤 할게. 다음에 기회가, 다시 있을 때, 그 때 보여줄게.”

한 아이가 말했다.

우리한테 당수 좀 가르쳐 주면 안 되겠냐?”

생각지도 못한 부담스런 요청이다. 그의 당수라는 게 너덧 가지 동작에 불과할 뿐더러 그조차도 창 너머로 익힌 독학이다. 그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도 다른 아이가 그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이런 새끼 같으니라고. 당수 같은 무술은 훤한 낮에 배워야 할 텐데 우리가 낮에 언제 그럴 시간이 있냐? 밭의 김도 매고 논의 피도 뽑고 소 먹일 꼴도 베고 돼지거름도 치고…… 종일 일하다 보면 금방 어두운데 언제 당수를 배워?”

또 다른 아이가 상황을 정리했다.

아니 강에 와서 뭐하는 기야? 빨리 물고기나 잡자고야.”

강이라고는 하나 깊어야 무릎까지 물이 닿는 정도다. 춘천의 소양강에 비하면 강이 아니라 하천이라 불러야 했다. 어쨌든 그는 동네 아이들을 따라 무릎 위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강물로 들어갔다. 물고기 잡기가 시작된 거다. 횃불을 든 아이가 천천히 나아가는 뒤로 따라들 가면서, 눈에 뜨이는 물고기를 손으로 잡는 방식이다. 미꾸라지 꺽지 퉁가리가 느닷없이 어둠 속에 등장한 환한 불빛에 놀라, 마치 강바닥에 얼어붙은 듯 그대로 있었다. 흐르는 물살 아래 그러고 있는 물고기를 손으로 조용히 접근해 움켜쥐면 되었다. 잡는 대로, 한 아이가 든 주전자에 담으며 강바닥을 누볐다.

횃불이 사그라질 즈음에 물고기 잡기를 마치고 강가로 나왔다. 모닥불에 삥 둘러앉아 먹고 마시며 노는 일이 이어졌다. 주전자에 든 물고기들을 한 마리씩 꺼내 밸을 따 날로 먹고는 소주를 마시는 거다. 그는, 불에 구운 것도 아니고 날로 먹는 물고기라 망설였지만 결국은 입안에 넣어 억지로 으직으직씹어 먹고 말았다. 혼자 예외가 되기 어려운, 전체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고소한 물고기 맛이라니! 그 다음, 옆의 아이가 건네는 술병을 받아 병나발을 한 모금 정도 불었더니 이내 취기가 올랐다. 애들이 준비해 온 소주가 댓병으로 다섯 개나 되었다. 취해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부르는 유행가.

사아나이 가아슴에도 눈무울은 있다아. 이이렇게 정을 주우우고 떠어나……’ ‘다앙신과 나아 사이에에 즈어 바다가 읎었다아면 쓰으라린 이벼얼은……’ ‘삼각찌이 로오타리에 궂은비는 오오느은데……

나중에는 합창으로 바뀌었다. 누군가가 내놓은 담뱃갑에서 한 개비씩 꺼내 피워 물자 밤하늘로 어지럽게 흩어지는 허연 담배연기들.

사실, 그는 지난 봄 학교 소풍 때 반 친구가 가방에 숨겨 갖고 온 미제 캔 맥주를 하나 마셔 본 게 음주 경험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렇게 드러내놓고 독한 소주를 연실 마시고 취하기까지 하다니. 어디 그뿐인가, 담배를 피워 보기도 처음이었다. 들이켜 본 담배연기가 매캐해서 눈물 콧물이 다 났지만 그렇다고 모두들 담배 한 대씩 피워 물고 노는 질펀한 자리에서 혼자만 예외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자신을 스스로 깡패들 많은 춘천에서, 당수 1단을 딴 무술 유단자로 포장해 놓았으니, 시골 아이들이 다 하는 술 담배 따위에 쩔쩔 매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터.

술자리가 파할 즈음에 그는 몸을 가누기 힘들게 만취했다. 전 날 산에서 만난 아이의 부축을 받으며 외갓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간신히 떼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변명하기를 잊지 않았다.

아 씨발, 몇 달 만에 술 좀 마셨더니 감당이 안 되네. 씨발.”

춘천이라면 통금 사이렌이 늑대처럼 으허어헝 하고 울었을 늦은 밤인데 충청도 시골에서는 그저 논 개구리들 울음소리만 성할 뿐이었다.

아이고, 이 놈이 꼭 용석이가 방학 때마다 하던 짓을 고대로 하네!”

집 마당까지 부축해 준 아이는 슬그머니 달아났고 그가 혼자 비틀비틀 토단에 올라설 때, 방문 열고 지켜보던 외할머니가 속상해 내뱉은 말씀이다.

용석이란 그의 하나뿐인 외삼촌이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닌다는데, 학창 시절에 방학만 되면 집에 내려와서 외할머니 속깨나 썩혔다던가 했다. 100여 리 떨어진 충주 시내에서 자취하며 고등학교를 다녔다니, 용석이 외삼촌도 고향 마을의 또래들 중에서는 유일한 고등학생이 아니었을까? 춘천에서 온 봉길이 조카처럼 말이다. 그가 희망리 마을 애들의 두목처럼 행세하게 된 것은 춘천에서 당수 1단을 땄다는 위세도 한몫했겠지만 당시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고등학생 신분이었다는 게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시골 애들은 집에서 일꾼처럼 지내는 자신과 다르게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 신분의 또래를 선망했다. 드러내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이래저래 그는 그 날 밤 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도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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