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일이다. K가 산짐승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물론 K도 어린 시절에 짐승들이 사람처럼 말하는 만화영화를 본 적이 많았다. 그런 기억의 영향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만화영화 속의 짐승들은 자기네끼리, 혹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식이었지만 요즈음 K가 만난 산짐승들은 불쑥 말을 건네고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럴 만했다. 만났다기보다는 맞닥뜨린 짐승들이었기 때문이다. 뭣 하러 산짐승들이 K에게 다가오겠는가? 멸종당한 호랑이나 늑대라면 모를까, 현재 산에 살고 있는 짐승들은 사람이라면 기겁해서 먼저 달아나는 종류들뿐이었다. 성질 사납다는 멧돼지 또한 사람 냄새를 맡으면 먼저 피한다는 게 정설이다. 따라서 산짐승들이 K와 만나는 경우란 불가피하게 맞닥뜨린 경우밖에 없었다.

맞닥뜨린 산짐승이 K에게 불쑥 말을 건네는 기괴한 사건들.

그 시작은 재수 없게도, 뱀이었다.

 

갑자기 무더워진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K는 땀에 젖어 산봉우리에 올랐다가, 하산하던 비탈길에서 웬 뱀과 동행하게 되었다.

뱀과의 거리는 이 미터쯤이었다. 끔찍한 대상이라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색깔이 화려한 능사 같았다. 뱀이 평탄한 데가 아닌 비탈길을 내려가다니, K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먹이를 찾다가 길을 잘못 든 게 아니었을까?

K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동시에 민망했다. 정상적인 여건에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동행이었으니까.

뱀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평지였더라면 얼른 그 민망하고 부담스런 동행에서 벗어나련만 워낙 가파른 지형이라 감수하는 모양이었다.

K는 자기가 멈춰 섬으로써, 뱀을 먼저 내려가게 하려 하였다. 하지만 워낙 가파른 곳이라, 멈춰 섰어도 저절로 미끄러지니 딱한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K는 아기 걸음마 떼듯 조심조심 비탈길을 내려가며 뱀과 동행하는데…… 식은땀이 목덜미로 흘렀다.

우스운 일마저 벌어졌다. 워낙 비탈진 길이라, 내려가는 뱀의 체형이‘S’자나 ‘I'자가 되지 못하고 ''자 형태로 휘고 만 것이다. 꼬리마저 비탈길 아래쪽으로 휘어, 대가리와 함께 질질 미끄러져 내려가는 꼴이었다.

식은땀 나는 공포 속에서도 뱀의 그 꼴에 웃음이 터질 것 같던 K의 복잡한 심경이란.

약 이삼 분 동행하다가K가 하산한 뒤 추정해 본 시간이다. 실제로 느껴지던 시간은 몇 시간 같았다.뱀은 비탈길가의 풀무더기 속으로 몸을 숨겼다. 두 뼘 넓이의 좁은 풀무더기라서 꼬리부분은 노출된 딱한 꼴이었다. 꿩이 급히 숨을 때에는 땅에 대가리부터 박고 본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어처구니없는 꼴에 K가 머뭇거리자 뱀이 불쑥 말했다.

형씨, 나를 못 보았다 치고 어서 그냥 내려가슈.”

기겁한 K는 비탈길을 정신없이 내려갔다.

경사도가 완만한 산길에 다다라,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데 방금 전 뱀이 불쑥 말을 건넸다는 사실에 놀라 경황이 없었다. K는 여전히 정신없이 내달아, 두어 번이나 돌부리에 발이 걸려 고꾸라질 뻔하였다.

산 아래 도로까지 내려온 K는 숨을 헐떡이며 시내버스를 기다리다가, 시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뱀이 말을 건 그 무서운 산에서 더 멀어져야 했다.

시내는 이십 여 리 전방에 있었다.

한참 걷다가 시내버스가 오는 소리를 들었다.

K는 버스에 탄 뒤에야 공포감이 다소 진정되었다. 버스 안의 아무나 붙잡고 그 기괴한 뱀 얘기를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운전기사는 운전하느라 바빴고, K를 제외한 다른 승객이라야 연세가 팔십 돼 보이는 노인 두엇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만일 그 사건을 얘기한다면 귀들이 어두워뭐라고? 뱀이 말을 잡아먹었다고?’같은 엉뚱한 반문을 할지도 몰랐다.

그럼, 집에 가서 식구들한테 털어놓을까?’생각했지만 날마다 산을 다니더니 머리가 이상하게 된가 보네.’하는 의심이나 받을 것 같았다.

‘2단지 주공 아파트앞 정류장에 버스가 당도했다. K는 뱀이 말을 건 사건을 혼자만의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 채, 지친 몸으로 하차했다.

 

그 사건이 있은 지 보름쯤 지났다.

다른 산으로 등산을 다니던 K는 또 다른 뱀과 맞닥뜨렸다. 정말 재수 없었다.

먼젓번, 가파른 비탈길이 중턱에 있는 산은 높이가 해발 오백이십 미터였지만 이번 산은 해발 삼백오 미터로 낮은 편이었다. 따가운 땡볕에 연실 흐르는 목덜미의 땀을 수건으로 훔치며 봉우리 가까이 다가간 K는 길게 누워 있는 뱀과 맞닥뜨린 것이다.

하마터면 발로 밟을 뻔했었다. K가 미처 못 본 까닭은, 그 뱀이 봉우리 바로 아래의 길고 좁다란 그늘 속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기어 다니는 뱀한테누워 있었다.’니 표현이 이상하다. 그래도 K는 그 그늘 속의 뱀이 편하게 누워 있다고 느꼈다.

그즈음 K에게 산짐승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생겨난 건 아닐까?

그 뱀이 쉴 만한 그늘이 생겨난 건, 중천의 해가 서쪽으로 조금 기운 오후 시간인 때문이었다.

봉우리까지 올랐다 하산해야만 등산한 거다.’는 고집을 가진 K였으므로, 그 뱀을 이유로 봉우리 바로 앞에서 뒤돌아설 순 없었다. 결국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뱀과 삼 미터쯤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뱀의 생김새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전체 길이는 일 미터쯤 되는데, 뭉툭한 대가리에 갈색과 검은색 무늬가 교차한 몸통이었다. 나중에 집에서 생물도감을 보고 알게 됐지만 먹구렁이였다.

일 이 분은 지났을 것이다. 웬만한 뱀이었다면 사람의 접근을 알아채고 그 자리를 떠났을 텐데 이 뱀은 미동도 않고 K를 뻔히 보며 그냥 누워 있었다. K가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뱀은 눈까풀이 없는 짐승이니 눈을 뜬 꼴로 오수를 즐기던 중일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라, 뱀의 처지를.

이른 아침부터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그것도 땡볕에 달궈진 후덥지근한 수풀 속을 헤매다가 마침 산봉우리 바로 밑에 시원하게 생겨난 그늘에 다다라, 뜨거워진 체온도 식힐 겸 꿀맛 같은 오수를 즐기는 참이었다. 어디, 뱀이라고 해서 온 종일 쉬지 말고 헤매라는 법이 있던가? 뱀도 사람처럼 당연히 쉴 권리가 있다.

이런 뱀의 오수에 대한 생각들은 K가 나중에 해 본 것이고,‘주위에 자신 말고 아무도 없는 한낮에, 눈앞의 그늘에서 팔자 좋게 쉬고 있는 뱀과 맞닥뜨린 당시K는 참 난감했었다.

K는 생각다 못해 그 자리에서 두 발을 땅바닥에 쿵쿵 굴렀다.

그제야 뱀은 ‘S’자로 꿈틀거리며 부근의 수풀 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는데 불평까지 했다.

젠장! 모처럼 쉬는데…… 짜증나네.”

K는 머리털이 한꺼번에 치솟는 공포를 느꼈다. 보름 전 비탈길에서 만난 뱀처럼 이번 뱀도 말한 것이다! K는 마음 같아서는 뒤돌아서 달아나고 싶었다.

봉우리까지 올라야 등산이다는 자신의 등산 원칙을 그 지경에서도 떠올리며 벌벌 떨리는 두 다리로, 그 뱀이 누워 있었던 그늘진 곳을 건너 봉우리에 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배낭에서 수통을 꺼내 물 한 잔을 마시며 유유자적하게 일대의 풍경도 둘러보며 여유를 즐겼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봉우리에 십여 초 서 있다가, 얼른 그 자리를 떠나 하산 길로 들어섰다.

푸른 수풀 속 어디에서 그 뱀이 어이, 잘 가!”하는 것 같아 걸음을 떼는 K의 두 다리는 여전히 후들거렸다.

산에서 가장 주의할 때가 하산할 때다. 마음은 다급해도 조심스런 걸음으로 하산해야 했다. 잘못해서 구르게 되면 수풀 속에서 그 뱀이 얼마나 박장대소할까!

산을 다 내려온 듯해서 방심했던 걸까. K는 산기슭의 소나무 등걸에 어깨를 부딪치고 말았다.

아픈 어깨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시내 쪽으로, 도로를 힘겹게 걸었다. 한창 걷다가 시내버스를 만났다.

버스에 있는 시골 아주머니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볼 정도로 K는 온통 땀에 젖어 빈자리를 찾은 뒤 털썩 주저앉았다.

 

맞닥뜨린 뱀이 불쑥 말하는사건들을 연이어 겪자 K는 등산을 중단했다.

좁은 아파트에 틀어박혀 지냈다. 등산으로 소일하던 K로서는 참 답답한 날들이었다.

아파트 단지 뒤에 작은 동산이 있었다. 해발 몇 미터라고 말할 것도 없이 작은 산이지만 그래도 꼭대기까지 다녀오면 삼십 분은 충분히 지나갔다. 땀도 제법 났었다.

K는 직장생활을 할 때는 주말마다 동산을 다녔지만 퇴직한 뒤로는 갈 수 없었다.

딱 한 번 갔었다. ‘종일 아파트에 틀어박혀 텔레비전이나 보는 생활에 지친, 퇴직 후 한 달쯤 되던 평일이었다. 애써 용기를 내 갔는데 막상 동산 어귀에 다다랐을 때, 애들이 잘 쓰는 말로 쪽이 팔려서더 이상 갈 수 없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바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라고는 K밖에 없었다.

그 날로 동산 다니기를 단념했고, 생각던 끝에 이삼십 리 근교의 산들로 행선지를 바꾼 것이다.

등산 채비도 하고, 시내버스도 이십여 분은 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근교 산을 다녀오면 하루가 잘 갔다. 땀에 젖은 몸을 찬 물로 샤워하고, 뒤늦은 점심을 차려먹은 뒤 노작지근한 몸을 낮잠으로 푸는 맛이 괜찮았다.

그러기를 이 년째.

평일에 혼자 근교 산을 다니는 호젓한 맛에 빠져드는가 싶었는데 이상한 뱀들과 잇달아 맞닥뜨리면서…… 다시 방 안에 죽치고 앉아 텔레비전이나 보며 소일하는, 퇴직 직후의 딱한 꼴로 되돌아온 것이다.

가족 중 누구도 K의 딱한 처지를 알 리 없었다. 가족이라고 해야 아내와 딸뿐이다. 아들은 군대 가 있다.

아내는 어느 식당에 주방 일을 다닌다. 재작년 봄에 대학을 졸업한 딸애는하루 종일 여러 가지 알바를 하느라고 바빠 보인다. 대학원 갈 등록금 마련이 목적이라는데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K가 지난 해 봄 직장에서 구조조정으로 퇴직된 후 생긴 가족들의 변화였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조차 재직 때 잘못 선 보증으로 다 날아가자, 각자 알아서 돈벌이에 나선 것이다. 대학 일년생이던 아들애까지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집의 생활비를 덜었다.

K는 산에서 겪은 놀라운 뱀들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각기 바삐 사느라 얼굴 보기도 힘들어지면서 가족 간 대화가 사라졌는데 모처럼 꺼낸 대화가 뱀이 불쑥 말을 건넸다는 이야기라면 어느 누가 화답할까?

어쩔 수 없었다. K는 늘 그랬듯 침묵하며 지내는 게 좋았다. 그러잖아도 가족들은 가장(?)이 재취업 의욕도 보이지 않고 산이나 다니는 데 불만들이 많았다.

 

보름이 지났다.

소나무 등걸에 부딪쳐 멍들었던 어깨도 좋아지자, 답답한 아파트에 있을 수가 없었다. 아내가 출근하고 삼십 분 뒤인, 열시 반에아들애 방에서 나온 K는 혼자 아침밥을 차려먹고 등산 갈 채비를 하였다.

아들애가 자원입대하며 비워진 방에서 K는 혼자 지내는 것이다. 거실에 있던 텔레비전도 그 방에 갖다 놓고 지낸다. 텔레비전을 볼 여유도 없어 보이는 다른 가족들이었다. 안방은 본의 아니게 아내의 독차지가 되었고 딸애는 제 방이 있었다. 남은 가족 세 사람이 방 하나씩 쓰는 셈이었다.

K의 배낭 속에는 냉수를 담은 수통과 건빵 한 봉지가 들어 있다.

오늘은 발코니를 뒤져, 예전에 장만했던 등산용 알루미늄 지팡이도 찾아 들었다. 뱀들과 잇달아 맞닥뜨리자, 호신용으로 챙긴 것이다.

시내버스를 탔다.

더욱 푸르러진 비탈길 산, 아래 정류장에서 내린 뒤 지팡이를 쥐고 등산을 시작했다.

해발 오백이십 미터 봉우리까지 올랐다 하산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청설모 다람쥐 까치들이 눈에 띄고, 고라니 같은 게 숲속에서 후다닥 달아나기도 했지만 별 일은 없었다.

그럴 만했다. 산짐승들과 사람이 맞닥뜨리는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 보름 간격으로 뱀들과 맞닥뜨린 사실은 어떻게 된 것일까? K는 세 가지 원인으로 분석해 보았다.

첫째, 뱀이란 존재는 다른 산짐승들에 비해 움직임이 느린 짐승이었다. 다른 산짐승들은 사지가 있어 사람과 맞닥뜨릴 것 같은 순간 잽싸게 달아날 수 있지만 뱀은 그렇지 못했다. 몸통을 구부렸다 폈다 하며 이동할 뿐이니, K와 본의 아니게 맞닥뜨리기도 했다는 형태적 시각의 분석이다.

둘째, 뱀과 맞닥뜨릴 때마다 몹시 무더운 날씨였다. 그런 날씨에는 산새들도 지저귀지 않고 나무그늘에서 조용히 쉬었다. K가 이 년째 산을 다니며 깨달은 사실들 중 하나다. 장끼 정도가 까투리들한테 존재감을 과시하듯 꿔엉!’ 하고 울 뿐, 대다수의 산새들은 나무그늘을 찾아 조용히 쉬고 있었다. 새라고 해서, 쉬지 말고 종일 지저귀라는 법이 있는가?

무더운 날씨일 때 변온동물인 뱀은 오죽 힘들까.

먹이구하기도 멈추고 시원한 그늘을 찾아 오수를 즐기거나, 너무 무더운 탓에 제 정신을 잃고 가파른 비탈길로 잘못 들어서거나, 했다가 K와 맞닥뜨린 것이다. 기후변화에 원인을 둔 분석이다.

셋째, K가 산에 오르는 날들이 하필 평일이었다.

주말마다, 전국의 산에는 검은 등산복들을 단체로 맞춰 입은 것 같은 직장인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명산들은 물론이고 도심 근교의 산들까지 주말에는 일주일 간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와 냄새로 넘쳐났다. 산짐승들이 그런 주말이면 본능적으로 조심해 지내리라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K는 평일에 혼자 조용히 산을 다니니, ‘사람들이 붐비는 날이 아니니까 마음을 놓아도 되겠지.’생각하며 해이해져 있던 뱀들과 맞닥뜨리고 말았다는 분석이다.

이 마지막 분석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K는 스스로 폄하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며칠 후, ‘먹구렁이가 오수를 즐기던 산에 오르다가 꿩 가족과 맞닥뜨린 것이다. 물론 평일이었다. 주말이었다면 많은 등산객들이 졸지에 고생했을 것이다. 오후 들어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졌기 때문이다. 마침 K는 시내버스에서 내린 직후여서 정류장 건물에서 소나기를 그을 수 있었다,

비가 그치자 K는 등산을 시작했다. 산길이 질퍽거리고 젖은 풀잎들이 발목에 차여, 다른 등산객이었더라면 등산을 단념하고 귀가했을지도 모른다. 귀가해도 딱히 할 일이 없는 K였기에 등산을 강행했다.

지팡이에 의지해 조심스레 산을 오르던 K는 봉우리가 보이는 오솔길에 이르렀을 때 꿩 가족과 맞닥뜨린 것이다.

좁은 오솔길을 어미인 까투리가 막 건넜는데 새끼인 꺼병이들이 미처 뒤따르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K가 갑자기 나타난 탓이었다. 하긴, 소나기까지 내린 평일 오후에 등산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안전한 수풀 속에서 새끼들과 잘 지내던 꿩 가족이 마음 놓고 바깥여행에 나선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사람의 등장에 놀라 좁은 오솔길을 넓은 횡단보도인 양 건너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꺼병이들과,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까투리. 애타는 장면을 얼떨떨하게 지켜보고 선 K에게 까투리가 불쑥 말했다.

좀 봐 주세요. 우리 애들 길 좀 건너게요.”

흉측한 생김의 뱀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K는 난데없는 까투리의 말에 놀라긴 했지만 소름끼치지는 않았다. 아무 동작도 않고 장승처럼 서 있음으로써, 까투리의 간청을 받아들였다. 꺼병이들이 부리나케 오솔길을 건너 어미 곁으로 가더니 함께 숲속으로 사라졌다.

예전의 K였더라면 까투리와 꺼병이들을 잡으려고 난리쳤을지 모른다. 잡아 봐야 제대로 요리해 먹을 수도 없으면서, 피 끓는 수렵본능에 피투성이 참극을 저질렀을 게다. 그러나 이 년째 산을 다니면서 K는 자신도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K는 꿩 가족에게 선행을 베풀었다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으로 봉우리에 올랐다. 소나기에 한층 푸르러진 주위 풍경을 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빗물에 젖은 하산 길은 몹시 미끄러웠다. 지팡이를 짚어가며 한 발 한 발 내려오다 결국 젖은 돌에 미끄러져 진창길에 주저앉았다.

과연, 우천 시에 등산하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뱀들을 만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뱀들은 소나기에 체온이 저하되자, 바위 아래 같은 데 들어가 어서 볕이 쨍쨍 나기만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K는 진흙 묻은 바지와 등산화를 냇물에 닦으며 뱀들의 처지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참 이상한 K의 변화였다.

 

꿩 가족들을 본 지 두 달이 돼가도록, 산짐승들과 맞닥뜨리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럴 만했다. 초가을로 접어들며 날씨가 쌀쌀해지자, 뱀들이 지난여름처럼무더위에 지쳐 아무 데서 오수를 즐기거나 길을 잘못 들어 비탈길로 들어서는 등의 허점을 보일 리가 없었다. 머지않은 겨울을 대비해 겨울잠에 필요한 영양분을 축적하려고 먹이 사냥에 바쁠 참이었다.

그래서일까, K는 평탄한 산길을 가다가뭘 물고 부리나케 가로질러가는뱀을 보게 되었다. 몸 무늬가 아름다운 작은 화사였다. 놈은 작은 아가리 넘치게 송장메뚜기 한 마리를 물고 있었다. 모처럼 잡은 먹이를 남한테 뺏기지나 않을까, 꿈틀거리며 달아나느라 아주 바빠 보였다.

K는 어처구니없어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그깟 송장메뚜기를 탐한단 말이냐?’

놈이 이런 말을 하며 수풀 속으로 달아난 듯도 싶었다.

이거, 내 꺼야!”

급히 스치는 풀잎들 소리에 뱀이 하는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길 가는 행인이 K에게 뭐라고 떠들며 급히 지나간 경우처럼.

다시 며칠이 지났다.

K는 비탈길 산에 올랐다가 이번에는 깃털 화려한 장끼를 만났다.

먼 산부터 가까운 산까지, 밀려오는 파도들처럼 보이는 벼랑 위 넓적한 바위에 잠시 앉아 쉴 때였다. 이 바위는 봉우리에서 비탈길로 내려가기 직전에 있다.

K가 먼 풍경을 바라보다가 어떤 느낌에 뒤돌아봤더니 장끼 한 마리가 삼사 미터, 싸리나무와 철쭉나무가 우거진 곳에 있었다.

K와 장끼는 서로를 보았다. 장끼는 눈이 대가리 전면이 아닌 측면에 있으니,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K를 보았다. 뱀이었다면 기겁했겠지만 꿩이니까 K는 편안한 마음으로 대면했다.

잠시 후 장끼가 고개는 그대로 두고 몸통만 뒤로 천천히 돌리며 말했다.

가 보겠습니다.”

마침내 고개까지 뒤로 돌린 장끼가 철쭉나무 아래로 사라져갔다.

K도 고개를 돌렸다. 다시, 밀려오는 파도 같은 산들을 바라보다가 바위에서 일어났다.

조심스레 비탈길을 내려왔다. 지난여름, 동행하던 뱀이 어줍게 숨던 작은 푸른 수풀더미도 이제는 누런 건초뭉치로 변해 있었다.

나무마다 단풍든 잎들을 점묘화의 점들처럼 조용히 떨어트렸다.

K는 낙엽 지는 가을 속에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높은 나무 위의 까마귀들, 산길에 떨어진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들, 청설모들이 K를 볼 때마다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저 사람, 오늘도 왔네.”“그러게 말이야.”“저 사람은 해코지 할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아무 걱정할 것 없어.”“맞아 맞아.”“웃기고 자빠졌네. 저러다가도 갑자기 해코지할지 모른다고!”“무슨 쓸 데 없는 소리!”

K는 어이없어 발길을 멈추었다. 산짐승들은 이내 숨죽이고 K의 눈치를 살폈다. 긴장된 침묵의 공간을 K는 지팡이로 가볍게 저은 뒤 다시 산길을 걸었다. 산짐승들이 등 뒤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깊어가는 가을 산을 K는 말없이 다녔다.

주로 비탈길 산을 다녔다.

비탈길 산 등산은 봉우리 아래 넓적한 바위에 앉아 쉬며, 먼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지팡이의 뾰족한 끝이 닳아 무뎌질 무렵 밤새 찬 서리가 내렸다.

오늘, 웬 일로 이른 아침부터 비탈길 산을 오르는 K였다. 워낙 된서리라 부근 풍경은 뿌옇기만 했다. 서리에 산길 바닥의 낙엽이 축축하게 젖어, 미끄럽기까지 했다.

산길 위로 뻗은 잣나무 가지 위에 청설모 한 놈이 앞발을 모으고 앉아, K를 지켜보았다. 된서리로 뭉개진 주위 풍경 속에서 놈은 마치 연극무대에 혼자 등장한 주인공 같았다.

조심성이 있는 놈이라면 K를 본 순간 다른 높은 가지로 이동해야 했었는데…… 가까이 다가오는 K를 미동도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K는 놈의 검정콩 같은 두 눈알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짚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놈을 때려잡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그래도 놈은 겁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늘 말없이 지나다니기만 하는 K를 믿은 것일까?.

서로 눈길이 마주치자 놈이 말했다.

이른 아침부터 웬일이어요?”

K는 가슴이 아팠다. 맞는 말이었다. 오전 열한 시는 넘어서 오르던 산길을, 오늘은 여덟 시도 되기 전부터 올랐으니. 된서리에 해가 보이지 않을 뿐 이른 아침이었다.

딸애가 이상해져서 집에 있지 못하겠더라고……

라는 말을 털어놓으려다 창피하단 생각에 K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없이 청설모가 앉아 있는 그 나뭇가지 아래를 지나갔다.

지나간 뒤 생각했다. ‘내가 그 말을 청설모 놈한테 털어놓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랬다가는, 놈이 놀라 다른 나뭇가지 위로 부리나케 달아났겠지. 그 사연에 놀란 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내 말소리 때문에. 워낙 조용한 산길이니까.’

초여름 비탈길에서부터 듣게 된 산짐승들의 말은 실제가 아니라 이심전심의 현상이었음을, K는 깨달았다.

맞닥뜨린 상황에서나 이루어지는 이심전심의 의사전달. 게다가 항상 일방적인 의사전달이 오늘 꼭두새벽에 K의 아파트에서 있었다.

노화의 한 증상인지, 오줌이 마려워 잠에서 깨니 새벽 두 시쯤이었다. 화장실로 가려고 방에서 나오던 K는 마침 현관문을 열고 귀가하는 딸애와 맞닥뜨렸다. 빛 감지 센서기능으로 잠시 켜진 현관의 전등불빛에 딸애의 얼굴이 환히 드러났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잠겼다. 잔상으로 남은, 난한 눈 화장에다가 새빨갛게 칠한 입술.

한 집에 있어도 오랜만에 대면한 부녀간이었다.

어둠 속이지만 소주 냄새도 났다. K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잊었는데 그 때 딸애가 말했다.

아빠. 저를 뭐라고 나무라지 마세요.”

사실, 딸애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딸애는 어둠 속에 잠시 서 있다가 말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 도대체 이 시간에 어떻게 된 건지, 얘기 좀 들어보자.”

하는 말을, 딸애한테 하고 싶었으나 그만 두었다. 부모 자식 간 대화를 잊은 지 너무 오래 되었기 때문에.

가족들 모두 대화를 잊었다.

몇 달에 한 번씩 휴가를 나오는 아들애도 밖에서 술친구들을 만나다가 귀대한다. 그럴 때만 K는 안방에서 아내와 잔다. 아들애 방을 비워줘야 하니까.

아내와 K만 같이 잔다.

K는 심란한 생각들에 더 이상 잠을 이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이른 아침부터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와 버린 것이다.

지금은 낡은 주공 아파트이지만, 삼십 년 전 K가 육백만원을 주택은행에 납입하고남은 융자금 육백만원을 이십 년에 걸쳐 갚는 조건으로 장만했을 때만 해도 이 도시에서 알아주는 명품 아파트였다. 노총각이지만 성실한 K를 믿고 맞선본 아내가 결혼에 응했다. 신혼살림을 차린 뒤 애들도 낳았다. 첫째가 딸이고 둘째가 아들이었다. 그렇게 낳으면 백 점 만 점이라며 직장 동료들이 축하주를 내라 해서, 십팔 평 아파트 안 가득히 아내가 술상을 차려놓고 대접도 했었다.

그런 때가 있었는데…… 아들딸이 귀여워 주말에는 항상 데리고 놀러 다녔었는데 어쩌다 이리 된 걸까?’

K는 배낭에서 건빵을 꺼내어, 아침식사로 우물우물 씹어 먹으며 비탈길 어귀에 다다랐다.

듬성듬성 선 나무그루들을 마치 타잔처럼, 건너뛰어 잡으며 비탈길을 올라가야 한다. 실수하면 비탈길 아래로 굴러 몸을 심하게 다칠 것이다. 여자들이 이 산을 등반할 엄두를 못내는 까닭이 바로 이 험한 비탈길 때문이다.

딸애는 굴러 떨어지는, 험한 세상살이에 들어선 것일까.

보름 전 일이다. K는 거실에 있는 쓰레기통을 비우려다, 캡슐 형 알약 몇 알을 발견했다. 소화제나 아스피린은 아니었다. 이상한 생각에, 나중에 그 알약을 약국에 알아봤더니 피임약이라 했다.

아들애가 휴가 나올 때 여친과 잠잘 생각으로 마련했다가 흘린 거겠지. 휴가를 나와도 집에서 잘 때가 많지 않았으니 말이야. 착한 내 딸애가 흘렸을 리 없어…….’

늘 오르던 비탈길이라, K는 습관적으로 나무그루들 사이를 건너뛰며 이런저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순간, 나무그루를 놓친 K는 아래로 구르다 바위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까마득해지는 의식 속에서 떠오른 장면이 하나 있었다. 일 년 전 이맘때였다. K가 예전의 직장 동료를 만나 저녁 식사 겸 술 한 잔을 나누려고 식당가를 함께 돌아다니다가 아내를 본 것이다. 아내는 어느 식당 앞에 서 있었다. 동료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자 둘과 서쪽에 있는 건물들 사이로 비치는 한 줄기 저녁 햇볕을 쬐려는지 식당 문 앞 가에 서 있었다. 갑자기 추워진 저녁 날씨였다.

늦가을은 초겨울의 문턱이다. 아내는 흰색의 얇은 종업원 옷차림으로 쭈그리고 서서 두 손을 비비고 있다가 K와 눈길이 마주쳤다.

K는 고개를 돌려 다른 식당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순간 아내가 내뱉는 말이 K의 귀에 들렸다. 아니, 귀에 들렸다고 K는 생각했다.

무능한 작자!”

그 날부터 K의 별난 이심전심 현상이 시작된 게 아니었을까?

식당 앞에 춥게 서 있던 아내 모습이 잠깐 떠오른 뒤 K는 아득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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