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은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업하던 남편이 암에 걸려 병석에 눕자 아내 되는 여자가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결국 남편은 세상을 떴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들 형제와 작은 아파트 한 채. 그나마 아파트는 많은 빚에 저당 잡혀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고민 끝에 상식을 넘는 선택을 하였다. 아들 형제를 내팽개치고 다른 남자랑 따로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문제는 그 남자와 옆 동네에서 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이다. 모자간에 길에서 맞닥뜨릴 상황이 되면 그녀는 먼저 다른 길로 피해 감으로써 자신이 원치 않는 만남을 용케 면하며 산다고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모성애만은 천고불변의 진리인 듯 영원할 거라 믿어온 무심으로는 정말 믿기지 않는 실화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형제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애들이 아니라 하나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고, 다른 하나는 군대에 갔다가 막 제대한 청년이라는 사실이다. 하긴, 형제가 열 살 미만의 어린이들인데 그녀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법의 심판을 받았을 테다.

그렇다 해도 무심으로서는 가난 앞에 무너진 모성애라는 차원에서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생각 끝에 지인들에게 과연 그런 비극이 가능할 수 있는지그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경제난이 심화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의견들이 다수였다. 뜻밖이었다.

결국 무심은 그 이야기를 작품화하여 허구로나마 못된 어미를 응징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를 응징했다고 해도 비극은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허구이긴 하지만 개연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비극의 재생산에 무심의 가슴은 다시 아팠다.

박쥐가 된 아이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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