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단지에 지어진 우리 집은 남향이 못된다이웃한 집들과 촘촘히 붙어 있어서 사실상 햇볕을 아침에만 받는 것이다그런데 아침에 한해 받는 햇볕이지만 계절에 따라 그 양()에 차이가 있다지켜봤더니 가을부터 햇볕 양이 줄다가 겨울에는 그 양이 거의 없다그러다가 봄이 되면 갑자기 햇볕 양이 대폭 는다.

요즈음 아침마다 드는 거실의 햇볕 양이 엄청나다눈부실 정도다봄이 온 까닭이다정말 돈 한 푼 들지 않고 공급받는 햇볕 양에 고마울 뿐이다아침부터 풍성하게 공급받는 햇볕 때문에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자세도 웬만하면 좋게좋게인 건 아닐지.

문득 햇볕 양이 인류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생각에 다다랐다자주 안개가 껴서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영국 땅에서 슬픈 사랑의 얘기 폭풍의 언덕이란 명작이 나오지 않았나죽느냐 사느냐 울부짖는 햄릿 왕자의 어두운 운명 또한 햇볕 덜 드는 덴마크 땅에서 벌어진다그 이상으로 햇볕을 받기 어려운 러시아의 경우는 더 말할 게 없다형제들 간의 어두운 갈등이 줄거리가 되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부터또스토예프스키의 많은 단편들에서 숱한 예를 본다.

 

모 작가의 소설작법이론에 소설은 반드시 날씨 얘기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예전에는 납득이 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든 요즈음은 그렇지 않다그렇다인간사는 날씨 없이 이뤄질 수가 없으며 그 때문에 인간사를 언어로 다루는 소설에 날씨 얘기가 빠져서는 안 될 터.

 

내일 아침동녘에서부터 햇살이 화사하게 쏟아지는 광경이길 기대한다.


(이 글은 2018년 2월에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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