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문학회’ 활동사> -2
한편 이병욱은 강의가 없는 날이면 이웃한 교대로 놀러가 춘고 시절 문우 이학천(당시 교대 학보사 편집장)을 만나 문학 얘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이 때 이미 등단한 최돈선 시인을 소개받았다. 다음은 그 때의 이야기다.
『1970년 늦봄 어느 날, 춘천교대 잔디밭에서였다. 당시 교대 학보사 편집장인 친구가 내게 최 선배님을 소개해 줬다.
“이번에 월간문학 시 부분 신인상을 탔는데 우리보다 4년 선배이셔. 인사 드려.”
재학 중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사실에 나는 경의의 마음으로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최 선배님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정작 눈길은 풀밭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뭘 찾으세요?”
“네 잎 클로버지. 행운의.”
하면서 미소 지었다.』
- ‘무심이병욱의문학산책’에서 발췌
그런가 하면 강원대에서, 합동강의실에서 교양 영어를 배우다가 박계순 소설가를 만나기도 했다. 그 때의 이야기다.
『박계순 소설가와의 인연은 1970년 봄, 강원대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국어교육과 1학년생이었고 박 선배는 서울의 숙명여대 무용과를 다니다가 고향 춘천으로 내려와 강원대 모 과로 학사 편입했다. 나보다 3년 선배다.
강대 학보에 자주 실린 내 글을 보고 흥미를 느껴, 쉬는 시간에 박 선배가 먼저 대화를 청했다. 합동강의실에서다.
“이름이 이병욱, 맞죠? 학보에 실리는 글을 아주 재미나게 보고 있는데 점심시간에 얘기 좀 나눌 수 없을까?”
박 선배와 나는 잣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교정의 길을 걸으면서, 화사한 늦봄의 햇살 아래 문학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자리를 옮겨 시내 중앙로에 있는 지하다방 ‘남강’에서 커피 마시며 얘기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얼마 후 여름방학이 왔고 개학하면서 2학기가 됐다. 그런데 박 선배를 더는 캠퍼스에서 볼 수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박 선배는 1학기를 마치자마자 자퇴해 버렸단다. 하긴 서울의 숙명여대에서 무용을 전공하다가 그 비슷한 과조차 없는 강원대에서 강의를 받자니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1995년에 제 1회 김유정소설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명실 공히 여류작가로서 자리 잡은 박계순 선배. 지난 2016년 7월에 첫 장편소설 ‘수’의 출판기념회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1970년에 잠깐 다닌 강대에서 이병욱 씨를 만난 일이, 내 문학의 씨앗이 됐다니까. 내 본래 전공이 무용이잖아. 이병욱 씨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문학에 흥미를 느끼게 된 거라고.”』
- ‘무심이병욱의문학산책’에서 발췌
지금 춘천의 인구는 30만이지만 6,70년대 춘천 인구는 10만 내외였다. 그래서일까 춘천 토박이인 이병욱은 알게 모르게 춘천지역의 문인들과 인연이 맺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1945년 광복을 전후해서 태어난 선배 문인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최돈선 시인과 박계순 소설가는 물론이고 이외수 소설가, 이도행 소설가, 최종남 소설가가 그 예이다.
그 중 최돈선 이외수 이도행 최종남은 춘천교대 동기생이었다. 무슨 까닭인지 최돈선 이외수 이도행은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다가 자퇴해버렸고, 오직 최종남만 졸업했다는 사실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