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 K는 저녁식사 후 반드시 밤거리를 30분 남짓 걷는다. 소화도 시키고 체력관리도 하는 거라 여긴다.

그런데 요즈음, 인근 중학교의 운동장으로 걷기 장소를 바꿨다. 이유는 한 가지. 코로나 때문이다. 밤거리도 수많은 행인들이 다니며 그 중에는 코로나에 감염된 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야경을 보며 걷는 밤거리에 비해 학교 운동장은 무척 지루하다. 어두운 데다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도는 일이므로. 딱히 할 일 없는 퇴직자이니 가능한 것 같다.

오늘 밤도 K는 그 지루한 어둠 속 운동장을 걷기 시작하려다가 뜻밖의 것들에 멈췄다. 하수도관이라도 다시 깔려는지 운동장 한편이 파 헤쳐진 데다가 포클레인까지 한 대 서 있는데 땅속에서 나온 게 분명한 큼지막한 바위 몇 덩이가 그 옆에 놓여있었다!

작은 돌 하나 없는 평탄한 운동장 바닥 아래에, 저런 큼지막한 바위들이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K는 순간 마냥 순해 보이는 사람들의 마음 밑바닥에 있는 큼지막한 무엇을 목격한 듯싶었다. 살아오는 동안에 순해 보이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한 적이 숱하게 있었을 듯싶었다. 저런 큼지막한 무엇이 그 사람들 심저(心底)에 있는 줄도 모르고.

K는 난데없는 두려움에 운동장 걷기를 포기했다. 내일이 되면 모를까 여하튼 오늘 밤은 그 큼지막한 바위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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