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송이는 가시들로 무장한 탓에 매우 조심스럽다. 밤송이 따다가 잘못되어 실명(失明)했다는 얘기가 괜한 게 아니다.

 

오늘 농장에 갔다가 밤나무에서 밤송이들을 땄다. 고슴도치처럼 가시들로 무장한 놈들이라, 곡괭이로 나뭇가지를 걸어 당겨 내려놓고 땄다. 문제는 딴 밤송이들에서 알밤을 빼내는 일이다. 손에 장갑을 끼고 해봤지만 밤송이 가시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사정없이 찔린다. 하는 수 없이 등산화를 신은 발로 밤송이를 밟아가며 알밤을 빼냈다.

 

그런데발로 밤송이를 밟아가며 알밤을 빼내는 내 동작이 왠지 낯익게 느껴졌다.

TV에서 본 한 장면이 떠올랐다. 높은 나무에 오른 오랑우탄이발에 해당되는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던 장면이었다. 우리 인류도 아득한 옛날에 오랑우탄과 별 다를 게 없었다. ‘발에 해당되는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기도 했다. 그러다가 직립보행하게 되면서 발에 해당되는 손이 서서히 지금의 발로 퇴화한 것이다.

 

나는 오늘, 오랜만에발에 해당되는 손을 한 번 써 보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해수욕을 하다가 발에 밟힌 바지락조개들을 발가락들을 조몰락거려 잡아내던 일까지 그 감각까지 선하게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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