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직생활 30년 중 27년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3년을 중학교에서 보냈다.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다시골 읍에 있는 중학교인데도 대도시의 중학교 못지않게 학력제고에 극성이었다보통 6시간 본수업 후에도 보충수업을 두 시간씩늦도록 학생들을 공부시켰다그러니초등학교에서 편히 지내다가 막 중학교에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은 아주 힘겨워했다그래도 하루 이틀 지나가면서 원래 중학교는 그러는가 보다’ 체념하며 적응들 하는데 그렇지 못한 학생이 하나 있었다나는 몇 십 년 지난 지금도 그 학생의 이름을 기억한다○○이었다.

 

산의 진달래꽃들이 아름답던 봄날에 녀석은 느닷없이 학교를 결석했다부모도 그 사실을 몰랐다가 담임선생의 연락을 받고 알았다니 사유(事由)가 딱히 없는 무단결석이었다.

대개 학생이 무단결석한다 해도 하루쯤이며해 저물녘 자진 귀가해서 부모님한테 호되게 야단 맞고는 다음 날부터 정상 등교를 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그러질 않았다하루이틀사흘무려 일주일이 되도록 무단결석이 이어졌다부모가 파출소에 실종인 신고를 할 만도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녀석이 동네 산에서 지내는 모습이 수시로 목격된 때문이다학교의 담임선생 또한 녀석과 친한 학생들을 찾아 녀석의 행방을 알아봤는데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걔가 혼자 산에서 진달래꽃들을 따며 놀다가 우리가 이름을 부르며 가면 얼른 다른 데로 숨어버린다니까요산이 우거져서 찾을 수 없어요.”

결국 부모가 결정을 내렸다. ‘학교 다닐 생각이 전혀 없는 아들이니까 학교를 자퇴시키자.’

 

그 후 전개된 녀석의 행로가 흥미로웠다녀석은 자신이 이제 학생 신분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하산(?)하더니 아는 중국집의 배달원이 된 것이다부모가 시킨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뤄진 일이라 했다.

놀랍게도자기가 다녔던 학교의 교무실에도 철가방을 들고서 배달 온 녀석작은 몸에 철가방은 무거워보였다선생 한 분이 짓궂게 물었다.

일이 힘들지 않니?”

말없이 미소만 짓는 녀석.

공부보다 이런 게 더 좋아?”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나는 깨달았다녀석은 하루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 공부하기보다는 철가방을 들지언정 여기저기 바람 쐬며 다니는 게 좋은천생 자유인(自由人)이라는 사실을.

 

이제 환갑 나이가 됐을 녀석지금쯤 잘 됐다면 그 시골 읍의 어느 중국집 사장님이 돼 있지 않을까그러면서 계산대만 지키지 않고 가끔씩 직접 철가방을 들고 밖으로 배달도 나갈 것이다. 오토바이를 신나게 타고서 말이다.

틀림없는 내 예감이다.   

 

사진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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