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생전 때 얘기’를 한 번 편히 나눠보자 해 놓고 반년 넘게 그러지 못하는 사태를 냉정하게 분석해 보았다. 깊은 내 잠재의식까지 살폈다. 그 결과 소스라칠 의문이 제기됐다.
‘내가 아버지 생전 때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렇다. 코로나 역병도 역병이지만 실상은 ‘어두운 70년대 가정사를 다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불편한 마음 한편’이 무겁게 꽈리를 틀고 있었다.
그 춥던 1973년 겨울이 떠오른다.
외수 형이 인제(麟蹄) 집에서 가출(?)해 춘천의 우리 집에 얹혔다. 정확히는, 남의 집에 전세 사는 우리 집에 외수 형이 얹혔다. 그 집 주인은 ‘집이 하도 낡아 남한테 전세 놓고서 다른 동네에 가 사는 부자(富者)’였다. 우리 식구가 전세 들어 사는 건물과, 도로 변에 접한 작은 건물(10평 남짓한 건물로, 가게로 세를 놓다가 잘 안 돼 포기했는지 텅 비어 있었다.)이 그의 소유였다. 건물들이 하도 낡아 2년 전세 기한이 끝나는 내로 부숴버리고서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지으려는 것 같았다.
김유정 문인비 건립 일로 거두리 야산을 헐값에 팔아버리고, 예총 일도 그만두고, 전화기 한 대로 버티던 아버지는 … 시내의 다방에 앉아 같은 실업자들과 무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필생의 사업’에 나섰다. 도로 변의 그 비어 있는 작은 건물을 활용한 ‘연탄 직매소 차리기’였다. 대단한 용기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연탄을 만지지 않는, 판매담당을 따로 둔 사장이었다. 10평 되는 낡은 공간의 사장이라니, 그 처절한 자존심…. ( 나는 이때를 회상하면 작가 윤흥길의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나이’가 떠오른다. 아홉 켤레의 구두를 가지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 그의 반짝이는 구두들은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 나가려는 상징물이다. 하지만 궁핍한 현실 속에서 무력하게 몰락해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채 두 달이 못돼 연탄직매소는 망해버렸다. 판매를 담당한 분이 밀린 임금 한 달 치 문제로 사나흘 항의하다가 포기했는지 사라져버리고… 아버지 또한 사업자금이랍시고 빌린 돈 때문에 어디론가 피신해 버렸다. 결국 애먼 연탄들만 백여 장 직매소에 남았다.
나는 외수 형과 함께 그 연탄들을 팔아치우기에 나섰다. 집 주인한테 그 건물을 어서 되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괜한 월세마저 누적될 판이었다. 형과 나는 연탄 수레를 끌고서 추운 거리와 골목을 누볐다.
연탄 직매소마저 망한 사업가(?)가 아버지였다.
그 후에 이어지는 아버지에 얽힌 뒷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이 선배와 ‘아버지 생전 이야기’를 하기로 언약하고는 늘 마음 한편이 편치 않았다. 결국 나는 ‘아버지 생전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으면서 꺼내려는 자기 갈등 속에 있었다. 내가 ‘나’를 제대로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