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코로나 광풍 속에서 이 선배와 나는 굳이 목숨까지 걸고서 만날 수는 없었다. 그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2월 8일 날이다. 이 선배가 중국 우한의 더럽기 짝이 없는 가축시장 풍경 동영상을 카톡으로 보냈다.
나 : 동영상을 보니, 전염병이 안 생기면 기이한 일이겠습니다.
이도행 선배 : 그러게나 말이오.
간단히 오간 그 대화는, 코로나19 광풍 속에서는 만남을 계속 연기할 수밖에 없다는 공감의 확인이었다. ‘한 번 편하게 만나 아버지 생전의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바람은… 몇 달째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 이럴 수가.
******
반년은 지난 6월 11일에야 이 선배와 나는 만났다. 서울에서 만난 게 아니다. 이 선배가 전철로 춘천에 내려온 것이다. 페북으로 알게 된 춘천 후배들(서현종 화백, 지은수 화백, 화양연화 최대식 사장)을 8호 광장 부근 설렁탕집 ‘감미옥’에서 만나는 것으로 이 선배는 춘천 일정을 시작했다. 감미옥에서 인사 나누며 식사한 뒤, 2차로 석사동의 음악카페 ‘화양연화’로 함께 이동했다. 그 자리에서 이 선배는 수원에서부터 갖고 온 책(‘봄내춘천 그리움’. ‘봄내춘천 옛사랑’)들을 후배들한테 선사하고는 유쾌한 담소의 시간을 가졌다. (문단 야사라 할까, 유명 문인들의 놀라운 일화를 많이 공개해줬다.)
그런 뒤 후배들과 헤어져 나와 단 둘이 공지천 부근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한 시간 가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는 오후 4시 직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선배가 ‘춘고 100년사 편찬회의’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모교인 춘고 정문 부근에서 나와 헤어진 이 선배는 편찬회의 참석 후 강촌에 있는 지인의 집(느티나무마을펜션)에서 숙박, 이튿날 수원으로 귀가했다.
뒤늦게 나는 깨달았다. 모처럼의 만남임에도 아버지 생전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일정이 바쁜 이 선배를 보고 내가 속으로 ‘그 얘기는 다음에 해야지.’하고 미뤘던 걸까?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