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아버지 생전 얘기를 카톡이나 전화로 주고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이 선배와 그런 얘기를 용무 해결하듯 나눌 수 있을까. 반드시 한 번은 편한 자리에서 마주보며 제대로 얘기 나눠야 했다.

그런 내 뜻과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일들.

얼마 안 돼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이 선배한테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 서울 가면 한 번은 들르고 싶었던 피맛골이란 데에서 선배님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고 내 뜻을 전하자 쾌히 그러지!’하는 응답이 왔다. 마침내 ‘(2020) 1 8일 오전 11시에 종각역에서 만나기로 언약이 됐다. 종각역에서 내리면 바로 피맛골이란다.

서서히 그 날이 다가오는데 다시 변수가 생겼다. 한겨울 날씨가 푸근해지면서 눈 대신 비 내리는 날이 이어지던 것이다. 그러더니 하루 전인 1 7일 오후에 이 선배한테서 카톡이 왔다.

 

이도행 선배 : 내일도 비가 온다는데 약속을 후일로 미루면 어떨까 해서. 내일 아니면 안 된다는 일도 아닌데 싶어 슬몃 문자 던지는 걸세. 그대 생각은?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비 오거나 말거나 그냥 만나는 거죠.’ 하는 대답도 생각했지만 서울 사정을 잘 아는 이 선배가 오죽하면 이런 카톡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에 대답을 이리했다.

 

 

: 그러시죠. 다시 연기하는 걸로.

 

 

나중에 안 사실은, ‘피맛골에 공사판이 벌어지는 바람에 여기저기 파헤쳐져서 지나다니기도 편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판에 겨울비까지 계속 내렸으니. ‘좁다란 골목에 맛집들이 아기자기하게 줄지어 있는, 정겨운 피맛골이란 내 상상은 환상에 불과했다. 이 선배와 만나는 일이 연기되면서 나는 이제는 피맛골이 아닌 다른 좋은 명소를 찾아보고 연락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느닷없이 코로나 역병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이번 코로나는 특히 기저질환이 있는 노약자한테 치명적이라 했다. 바로 이 선배와 나를 겨냥한 거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이 선배는 오랜 당뇨를 앓는 몸이며 나 또한 가족력인 고혈압 환자. ‘사람들이 많은 곳을 삼가는 게 좋다는 전문가의 조언도 보도됐다. 천생 이 선배와 나는 코로나 역병이 가라앉은 뒤에나 만나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쉬 가라앉을 것 같지 않은 조짐이 연실 보도된다는 점이다.

나는 ()에 들어가려고 몇 번을 애썼으나 결국은 그 성에 못 들어가는 채로 끝나는 카프카의 이란 소설을 현실로 겪는 것 같았다. 공교로운 것은 의 주인공이 K라는 사실이다.

K.

내 두 번째 작품집 이름이 ‘K의 고개이며 작품집 속 동명의 작품에서 K는 실존적 위기에 직면한 채 결말을 맞이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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