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어쩐다?’고 난감해지기는 오후 1시가 막 지나서다. 그 때까지 장편소설을(임시제목 박쥐나방동충하초’) 쓰느라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지난 2월말, 200자 원고지로 1000매쯤 되는 장편 완성을 목표로 시작한 집필이 500매쯤 됐다. ‘티베트의 오지 마을에서 친구 따라 먼 여행길에 나선 주인공이, 친구가 자기 목숨을 노리고 여행 동반을 제의했음을 깨닫고 탈출하면서 빚어지는 갖가지 사건들을 한창 써나가는 참이었다. 내가 아는 원로 문인께서 사실 문학하는 사람은 정신이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다고 말씀한 적이 있는데 정말 나는 며칠째 밤잠을 설쳐가며 정신이 어딘가 이상한 사람의 짓을 한창 하는 중이었다

어쨌든 겸사해서 춘천에 온 김에 얼굴이라도 보려고 전화한 이 선배한테 나는 잘못을 해도 수준 낮은 잘못을 했다. 지난번 카톡으로 이 선배가 나중에 만나면 듣고픈 얘기가 많네.’ 했던 대목까지 뒤늦게 떠올랐다. 몰랐던 우리 아버지에 얽힌 얘기들을 제대로 편하게 듣고 싶어서 전화한 것을 그렇게 퉁명스레 대했으니.

이를 어쩐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고자 했다. 급히 전화했다.

선배님, 접니다. 지금 어디 계세요? 제가 점심을 대접하고 싶거든요.”

그러자 이 선배가 먼저 작은 목소리로 아내 분한테 거 봐. 당신이 오해하는 거야.’ 말하곤 이내 서둘러서 내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차 안에 있네. 수원으로 돌아가는 중일세. 춘천 일을 대부분 봤거든.”

이 선배는 차 운전을 하지 않는다. 아내 분이 운전한다. 차를 구입할 때만 해도 이 선배가 술을 즐겼던 게 아닐까. 그래서 차 운전을 아내 분이 맡는 거로 정해진 게 아닐까.

점심도 대접하지 못하고 선배님! 죄송해서 어쩌지요?”

, 다음에 또 볼 텐데.”

그렇게 모처럼 춘천 온 이 선배 내외분한테 나는 점심 대접도 못하고 황황히 보내드리고 말았다.

솔직히 나 같으면 두 번 다시 그런 후배와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선배는 이해하고 넘어갔다. 세 달 후인 10 11, 이 선배가 다시 춘천 오면서 내게 전화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딱부리(이 선배가 즐기는 최종남 작가의 별명이다.) 최종남이가 강대 병원에 입원했다 거든. 기흉이 악화된 거지. 이번에 안 보면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문병 가려는데 바쁘지 않으면 동행해도 좋소.”

바빠도 동행해야죠.”

최종남 선배와 나는 지난 5월에 후평동의 연당막국수 집에서 점심을 같이한 데 이어 9월 중순에 김유정 문학촌에서 중고등학생 대상 글짓기 심사를 함께 맡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가까워진 사이. 바로 열흘 전인 10 2일에 문학촌 행사장에서 앉을 자리를 찾아 서성이는 나를 보고 최 선배가 손수 빈 의자를 마련해 주면서 하던 말이 여태 생생하다. 창백한 안색에 숨도 편히 못 쉬는 채로 말이다.

 앉아.”

 

그런지 열흘도 안 돼 강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이다.

산소호흡기 줄과 링거 줄은 기본이고 그 외도 여러 생명 유지 장치에 매여 병상 침대에 누인 최 선배. 이 선배를 먼저 만나고는 다음으로 내게 손짓해 가까이 다가오도록 했다. 너무나 딱한 모습에 할 말을 잃은 내게 안경도 쓰지 않은 창백한 얼굴로 겨우 말했다.

우리는 너무 늦게 만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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