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춘천교대는 2년제로서 학비 대부분을 국가에서 지원해줬단다. 특히 남학생들은 군사훈련도 병행하여 군 복무가 면제되는 특전까지 있었다고. 아무리 그런 이점이 있었다 해도 훗날의 소설가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시에 입학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해 못 할 일은, 입학들은 했지만 정작 졸업한 사람은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최종남’만 졸업했을 뿐 그 외는 몇 년씩 다니다가 자퇴하거나 다른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해 떠나거나 한 것이다. (나는 기회가 되면 그에 얽힌 사연들을 모아 작품으로 써 볼까 한다.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 같다.)
이도행 선배가 다시 춘천에 내려온 것은 산하가 온통 푸르른 6월 22일이다. 아내 분과 함께 온 것이다. 거주지인 수원이 여기 춘천보다 몇 배로 큰 도시임에도 ‘상춘(上春)했다’는 표현을 하였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갈 때 사용하는 ‘상경(上京)’이란 말에 빗대 춘천에 온 것을 상춘이라 하는 것이다. 이 선배가 얼마나 춘천을 좋아하는지 짐작 되는 표현이다. 이 선배의 춘천 사랑은 그 날 내게 마침내(?) 선사한 책 두 권의 제목들에도 여실하다.
‘봄내춘천 그리움’
‘봄내춘천 옛사랑’
이 선배가 춘천에서 살았던 기간은 11년(1958∼1969)밖에 안 되지만 평생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있음에!
그 날 나는 선사받은 두 권의 책을 이 선배와 헤어진 뒤 집안에 틀어박혀 이틀에 걸쳐 다 읽었다. 그리고 소감을 문자와 카톡으로 연실 전했다.
“중편소설 ‘무채도’가 압권입니다. 추운 날 시신 태우는 화덕에서 잠을 자는 양중사. 선배님의 작품들 중 대표작이라 여깁니다. 연숙, 고모부, 말대가리 등 개성 강한 인물들…. 한동안 제 뇌리 속에 살아서 숨 쉴 듯싶습니다. 두 권의 책을 완독함으로써 소설가 이도행의 세계를 깨닫게 됐습니다. 모름지기 예술가는 작품으로 존재합니다. 조폭이 칼 솜씨로 존재하듯이. 스님이 불심으로 존재하듯이 말입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봄내춘천 옛사랑을 방금 다 읽었습니다. ‘달빛 소나타’와 ‘풀꽃 목숨 하나’가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달빛…’은 금실과 은실로 직조하듯 전개해나간 솜씨가 일품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문장 가다듬기에 특별한 공을 들인 게 분명합니다. 왜냐면 다른 작품들 문장과 그 느낌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풀꽃…’은 연숙이란 여인의 비극적 생애가 한반도의 처절한 분단사와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하는 수준작이었습니다. 생모인 고모가 왜 굳이 불교식으로 고인의 넋을 달래려고 나섰는지 그 심정이 헤아려집니다. 억겁의 연과 한을 달래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이 정도만 언급하고 다음에 뵀을 때 이어서 하겠습니다.”
문자와 카톡으로 읽고 난 감흥을 전하고 나서 내게 의문이 생겨났다.
‘왜, 이런 좋은 작품들(특히 중편 무채도)이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까?’
‘왜, 다른 동기 소설가들만큼 빛을 보지 못했을까?’
그 때까지만 해도 이 도행 선배가,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아끼는 후배였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나는 물론이고 이도행 선배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