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한 기억력이 있다. 지인들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별 쓸 데 없는 것’을 기억하니 말이다. 이 수필의 내용 또한 내 이상한 기억력 탓이다.)
저 먼 라오스에 가 사는 후배 ‘허진’이 사진들을 페북에 올렸다. 미얀마의 잔잔한 호수를 배경으로 한 사진들이다. 나는 순간 30여 년 전 ‘허진과 모교(春高)에서 2학년 담임할 때, 소풍날 있었던 장면’이 선하게 떠올랐다.
위도로 가는 봄 소풍이었다. 지금은 개발한다고 온통 파헤쳐져 있지만 그 즈음 위도는 학생들을 풀어놓아도 관리하기 좋은 조그만 섬인데다가 식당과 구내매점도 있어서 학교 소풍 장소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다만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야 하는데 선착장이 비좁아서 부근 차도(車道)에다 학생들을 정렬시켜야 한다는 게 단점이었다. 차도에 학생들을 정렬시킨다니, 요즈음 같아서는 큰일 날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차들이 별로 없던 시절이라 그런지 별 문제 되지 않았다.
수백 명 학생들이 차도에 빽빽이 서 있을 때다. 화천 방향 쪽에서 중후한 승용차 한 대가 나타나더니… 담담히 지나갔다. 웬만한 운전자 같았으면 차도의 학생들한테 경적을 요란스레 울리든지, 차를 일단 멈춘 뒤 ‘길 좀 비켜 달라!’ 고 말하든지 하고서 운행했을 텐데 그러질 않은 것이다. 그저 차의 속도를 조금 낮추고서 조용히 담담히 지나가던 것이다. 그래도 학생들은 알아서 구약성경(聖經) 속 홍해바다가 갈라지듯 길을 내주었다. 그 때 내 옆의 허진 선생이 혼잣말 했다.
“거 좋다!”
일시에 물러서서 찻길을 내준 학생들한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경적도 울리지 않고 조용히 학생들 사이로 지나가는 승용차 운전자의 운전기술에 대한 경의라고 나는 느꼈다. 왜냐면 허진 선생은 운전에 관한 한 한 수 위인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자동차는커녕 오토바이만 타고 다녀도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던 시절에 그는 이미 70년대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던 것이다.
라오스에 사는 허진이 미얀마의 잔잔한 호수 사진들을 페북에 올렸다. 그 사진들을 보는 순간 나는, 30여 년 전 그가 학생들 사이로 경적도 울리지 않고 담담히 지나가는 승용차를 보며 선승(禪僧)처럼 혼잣말 하던 게 떠올랐다. 생생하게.
“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