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가 자리에 앉은 내게 물었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저는 커피 마시면 밤잠을 못 이루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걸로 주시죠.”
사내가 얼마 후 유자차를 끓여 내왔다. 나는 내 책들(‘숨죽이는 갈대밭’과 ‘K의 고개’)을 건네며 말했다.
“제가 드리려고 갖고 왔습니다.” 사내가 책들을 받으며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그 말에 나는 내가 소설 쓰게 된 내력을 털어놓았다. ‘젊은 시절의 꿈인 소설을 쓰고 싶은 갈망에 30년 교직을 명퇴했다’는 것과 그에 얽힌 얘기다. 얘기는 자연히 ‘먹고 사는 일과 예술을 조화시키는 문제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예술에 꿈을 갖는 이들이면 숙명적으로 겪어야 하는 문제다. 쉬운 답은 없다. 얘기 끝에 사내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 카페의 실내 색이 강렬해서 놀라지 않았습니까? 일러스트와 디자인을 하는 아들 녀석이 직접 구상하고 직접 페인팅 한 거죠. 여기 건물주가 와서 보고는 놀라서 이러지 뭡니까? ‘아니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그래요?’하하하.”
함께 웃다가 내가 의견을 말했다.
“괜찮아 보입니다. 뭐라 그럴까, 야수파 그림 속 같다고 할까요?”
“저도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마음 편해지는 색들입니다. 아들 녀석이 화양연화라는 상호도 작명했지요.”
두 시간 가까이,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우선은 음악 얘기다. 사내의 수십 년 음악 사랑을 보여주듯 벽을 가득 채운 LP판… 나는 음악의 홍수 속에 빠져서 주체하기 힘들어졌다. 간신히 내가 좋아하는 팝송의 제목 하나를 기억해 냈다.
“제가 젊은 시절, 그러니까 70년대 중반쯤 알그린의 For the good times을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고는 흠뻑 빠지지 않았겠습니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