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사랑을 싣고란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등장인물들이 20여년 만에 혹은 30여 년 만에 만나는 장면이 대단한 것처럼 방영되는데나는 그럴 때마다 고작 2, 30년 갖고 뭐 그러나하는 저항감을 어쩔 수 없다. 2, 30년을 넘어 4, 50년 만에 지인을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50년 만에 옛 친구이정규를 만났다. 50년만이라고 계산한 근거가 있다. 고등학교 때 그 얼굴을 마지막으로 봤으니 말이다.

 

내가 그를 굳이옛 친구 이정규라 하는 까닭이 있다. 춘천에서 같은 초(부속초등학교) (춘천중학교) (춘고)를 다닌 데다가 특히 중학교 때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여태 생생한 추억은 중 2 때 시험공부 한답시고 정규네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일이다.

 

당시 정규네 집은 2층 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층에서 2층으로, 실내 내부계단으로 올라갔다. 허름한 집들이 널린 산동네의 셋방살이 집 아이가,‘실내 계단이 있는, 2층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됐으니얼마나 놀랐을까. 1965년 당시 춘천은 초가집, 판잣집이 널려 있었고 기와집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런데 2층이나 되는 양옥집에 살던 친구 이정규.

처음에 정규를 뒤따라서 1층으로 들어섰을 때 거실에 정규 아버님이 안락의자에 앉아 계셨다. 정규가 아버님한테 나를 오늘 밤 같이 시험공부를 할 반 친구라고 말씀 드린 것 같다. 그러자 아버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잖아도 엄숙한 실내 분위기에 나는 주눅이 들었는데 정규 아버님은 무섭게 생긴 얼굴이었다. 정규를 따라서 2층으로 오르는 나선형 실내 계단을 밟으면서 나는 얼마나 가슴이 벌벌 떨렸는지 모른다.

 

그런 정규를 며칠 전에 만난 것이다. 50년 만의 해후다. 우리가 반세기 만에 만나게 된 것은, 정규가 젊은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 갔기 때문이다. 나야 한국 땅을 벗어난 적 없이 한평생 살아왔으니우리는 만날 일이 없었다.

겸사겸사 잠시 귀국했다는 옛 친구 이정규.

술자리에서 다른 친구들과 앉아 있다가, 연락 받고 나타난 나를 반가워하며 이런 말을 해서 나를 소스라치게 했다.

미국에서 네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을 늘 보고 있어.”

그랬다고?! 그러면 진작 방문자로서 네 이름을 밝혀놓지 그랬어. 내가 얼른 답 글을 달았을 텐데.”

나야, 네 글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그러면서 저 먼 러시아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동창김광준과 내가 페이스북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걸 봤다며 잔잔히 웃었다. 정말 대단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었다. 내가 정말 놀란 것은 정규의 이런 말이다.

요즈음 나라가 어지러워 보여 외국에 사는 교포들이 걱정 많아. 나도 그래. 그래서 너한테 부탁하는 건데 이런 때에 바르게 나아갈 길을 글로써 제시해주었으면 해. 다른 사람들은 못해. 작가들이 할 수 있지.”

무명작가한테 그런 대단한 부탁을 하다니 나는 두 번 소스라쳤다. 정규는 진지한 낯으로 덧붙였다.

정말이야.”

그러면서 내 손을 꼭 잡았다.

 

우리는 자정을 넘어 헤어졌다. 50년 세월의 강에서, 강가에서 모처럼 상면했는데 언제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나는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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