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이 맞는다면, 1990년경 그 설렁탕집은 10평쯤 되는 작은 식당이었다. 위치도 동네 안쪽에 있어서 그다지 눈에 뜨이지 못했다. 하지만 맛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3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대로변의 유명한 설렁탕집이 된 거다.

맛이 있다는 소문은 설렁탕과 함께 실하게 나오는 깍두기 덕인 게 분명했다. 더러는 산지(産地)의 무값이 천정부지로 뛰어도, 손해를 무릅쓰고 손님상에 올랐다. 그 변함없는 손님 대접에 알아주는 유명 설렁탕집이 되었을 거라 나는 확신한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1월 초순에 내리는 겨울비다. 이런 날 밤, 지인들과 그 설렁탕집에서 만나 식사하며, 반주로 시작된 술자리를 이으며 나눈 담소는 얼마나 즐거웠던가!

별의별 얘기가 다 상 위에 올랐다. 남을 헐뜯는 험담은 없었다. 술잔이 오가며 화기애애하게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험담 따위는 감히 기웃거릴 수가 없었다.

언어의 불연속성’ ‘언어에 대한 화가의 입장’ ‘우리나라의 진경산수와 서양의 입체파 그림이 상통하는 문제’ ‘종교와 본능의 문제등 철학적인 얘기부터 기획하고 있는 책의 내용’ ‘선배 작가와 선배 화가의 젊었을 적 일화’ ‘학창시절 있었던 일’ ‘좋아하는 유행가얘기 등 참 즐거웠다.

사람 사는 게 뭔가.

술잔을 기울일 수 있다면, 마음에 맞는 지인들과 설렁탕을 안주로 즐거운 담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 낙이 아니런가.

더구나, 건조한 날씨라 여기저기 잇따르던 화재들을 일시에 잠재우는 겨울비마저 내리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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