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내가 강원대 1학년 학생이던 1970년에 박계순 선배만 알게 된 게 아니었다. 그 늦봄 어느 날 춘천 교대에 고교 적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교정 잔디밭에서 네잎클로버를 찾고 있던 최돈선 시인을 만나 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태백산맥 너머 강릉고 3학년 학생이 내게 편지를 보내와 내년에 강원대에 진학해서 이 선배님과 함께 문학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란 포부를 밝혔으니 바로박기동 시인이다.

이듬해인 19712, 박기동 학생이 강원대에 진학하게 되면서 역사적인(?) 만남이 이어졌고 세 달 후 5월 어느 날 우리는 지하다방 남강에서 그리고문학회를 결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 ‘그리고 문학회를 하필 남강 다방에서 결성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1년 전 내가 박 계순 선배와 처음으로 만나 커피를 마시며 문학 대화를 나눈 장소가 바로 남강 다방이었음을. 남강 다방은 시내 중심가에 있었으며 맞은편에는보리수 다방이 있었다. 남강 다방과 보리수 다방은 여러 모로 대조되었다. 남강 다방은 팝송 및 대중가요를 틀어주었고 보리수 다방은 클래식음악만 틀어주었다. 남강 다방은 지하 1층에 있었고 보리수 다방은 지상의 2층에 있었다.

지하 층계로 해서 남강 다방에 들어서면 그 날 밤 이슬이 맺힌 눈동자, 그 눈동자하면서 가수 이승재의 눈동자Ray A. Peterson‘Tell Laura I love her’노래가 흘러나오기 일쑤였다.

보리수 다방에 가면 운명 교향곡 같은 클래식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창가에 앉아 책을 보거나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이승훈 시인(2018년 별세)’을 뵐 수도 있었다. 그분은 춘천 교대 교수였다. 어느 날 나는 창가의 그분께 용기를 내 합석을 요청했다. 강원대 국어과를 다니는 학생이라고 나 자신을 밝힌 뒤 나름대로 문학적인 고민을 말씀 드리고 해답을 부탁드렸다.

초면의 다른 대학 학생임에도 문학적인 고민이라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이승훈 시인은 아주 따듯하게 답을 말씀해 주었다. (그 문학적 고민의 내용은 나중에 밝히기로 한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다방을 나왔다. 반세기 된 시간이 흘렀지만 보리수 다방 창가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거나 독서를 하던 그분의 모습이 생생하다. 현대인의 불안이나 소외를 다룬 난해한 시들을 발표하던 시적 경향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던 따듯한 말씀이라니.

(이승훈 교수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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