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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도 넘은 일이다. 1963년에, 가수 박일남은‘갈대의 순정’으로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의 매력적인 저음과‘갈대의 순정’ 노래는 아주 잘 어울려서 당시 30만 장이라는 기록적인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다. (요즈음으로 치면 300만 장 이상이다.)
이런 사실을 떠나 ‘갈대의 순정’ 노래는 대한민국의 사내라면 한 번쯤은, 술자리나 노래방에서 불렀을 거라 짐작한다. 글쎄, 요즈음의 신세대들이‘처음 듣는 노래인데요?’하며 반발한다면 …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에 나올 문제는 아니니까 말이다.
어쨌든 우리나라 대중가요 사에 한 획을 그은 ‘갈대의 순정’. 노랫말이 이렇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사랑에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마라
아 아 아 아 아 아 갈대의 순정
말없이 가신 여인이 눈물을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눈물에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마라
아 아 아 아 아 아 갈대의 순정
그런데 나는 이 노랫말이 부분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갈대의 순정’이라 했는데 … 노래를 부르는 사내(화자) 마음이 갈대의 순정이라는 건지, 사내 곁을 떠난 여자의 마음이 갈대의 순정이라는 건지 문맥 상 분명치 않은 것이다.
얼마나 국민적인 노래인지, 합창으로 이 노래를 부르면서 술자리모임을 파하기도 했는데 그 순간에도 나는 도대체 갈대의 순정이란 표현의 주체는 사내냐, 여자냐? 하는 의문을 어쩌지 못했다.
오늘 한 번 따져보았다.
다행히도 박일남 씨가 밝힌, 이 노래의 가사에 대한 뒷얘기가 인터넷에 있었다. 최근,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박일남 씨가 한 얘기란다.
“원래 ‘갈대의 순정’이 그 가사가 아니었다. 작곡가 오민우 선생님이 불러보라고 했는데 가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몇 군데 고쳤다. 제가 쓴 부분이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였는데 그 부분이 어필된 것 같다.”
그렇다면 갈대의 순정이란 표현의 주체는 따져볼 만큼 복잡다단한 게 아니라는 데 내 심증이 굳어졌다. 대중가요 노랫말은 그 노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이해해야 할 거란 평범한 판단이다. 더구나 이 노래가 만들어진 때가 남녀평등의 분위기가 아닌, 남자가 우선인 시대다. 남자는 결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되던 시대였다. 사나이라면 속으로 울어야 했다.
따라서 갈대의 순정이란 표현의 주체는 여자라고 봐야 옳았다.
이런 스토리다.
‘여자가 갈대처럼 마음이 쉬 흔들려 남자 곁을 떠나가 버렸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지만 속으로 운다. 왜냐면 사랑에는 약하기 때문에. 그래서 남자는 자신한테 다짐한다. 울지 말자고.’
이런 내 판단의 근거가 노랫말의 후반부에 제시된다.
말없이 가신 여인이 눈물을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즉 여자는 남자의 눈물도 모르고 떠나가는데 그 까닭은 쉽게 마음이 흔들리는 갈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남자는, 갈대처럼 쉬 흔들리는 여자를 원망하지만 바로 그런 여자 때문에 속으로 울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서 피장파장이다.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뒤로 항상 되풀이되는 과제(課題)일 터!
그림 = 김춘배
https://youtu.be/aW4vMW6OT9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