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선배님이 별세한 지 열흘인데 나는 아직도 실감 못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다. 그럴 만했다. 최 선배님과는 안 지는 꽤 오래지만 정작 만나게 된 것은 근년의 일이라는 사실을.

꼭 짚어서 말한다면 3년 전인 20168월 어느 날 박계순 선배님의 출판기념회(장편소설 발간 기념이다.) , 몇 십 년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때 마침 나도 난생처음으로 첫 작품집숨죽이는 갈대밭을 냈을 때였으므로 최 선배님한테도 한 권 드렸다.

 

그 일이 계기가 돼 최 선배님은 나를 같은 춘천의 후배 소설가로서 인지했다. 이듬해인 2017년 선배님이 작품집 단둥역을 발간하면서 내게 직접 한 권 선사했으니.

내가 사정이 생겨서 선배님의 단둥역출판기념회에 참석 못했는데 황공스럽게도 따로 시간을 내 그 책을 증정한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이듬해인 2018년 말에 내가‘K의 고개를 두 번째 작품집으로 내면서 선배님께 한 권 드렸다. 선배님이 나중에 어떤 모임에서 나를 만났을 때 소감을 말했다.

단번에 다 읽었지. 재미있었어.”

 

올해 들어서는 모 단체의 산문 심사위원으로서 선배님과 함께했다. 모처럼의 기회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선배님, 저하고 사진 한 장 찍어요.”

그래서 찍은 사진(김금분 시인이 수고했다.)을 내 블로그에 간단한 글과 함께 올렸다. (참고: 무심이병욱의 문학산책 중 최종남 선배님’. 8월 게시)

나중에 선배님이 내 블로그에 들어와 그 사진과 글을 보고는 그리도 재미있어할 줄이야. 내게 전화까지 하며 즐거워했다. 솔직히 나는 선배님이 별로 말이 없는 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조금은 놀랐다.

그 두 달 후 김유정 문학촌 행사장에서 다시 선배님을 보게 됐다. 그런데 안색이 아주 안 좋았다. 창백했다. 그런 중에도 후배인 내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애썼다. 초대받은 손님들이 많은 탓에 자리가 부족했던 것이다. 지금도 기억난다. 선배님이 겨우 내는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 앉아.”

나는 다른 분과 인사하느라 선배님의 그 자리에 앉지 못했다.  

그 후 얼마 안 돼 이도행 선배님을 따라 강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아픈 몸으로 누워 있는 선배님을 보게 됐다. 산소호흡기 줄까지 꽂은 선배님이 나를 보고는,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가까이 다가간 내게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너무 늦게 만난 것 같아.”

한 달 후 돌아가셨고 나는 이도행 선배님과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최종남 선배님.

실제 만남이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아직도 나는 선배님의 별세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다.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 어제 밤에 찬 비 내리는 길을 걷다가 문득다시는 최종남 선배님을 만날 수 없구나!’ 깨달았다. 별세(別世) 사는 세상을 달리하니까.

 

선배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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