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5살 무렵(1955년경) 우리 집은 지금의 춘천교대부설국교 바로 앞 동네에 있었다. 집 마당에서 놀다가 남쪽을 바라보면 아주 멀리서 전동차가 지나가곤 했다. 달랑 한 양()이라서 기차라기보다 장난감차 한 대가 가는 것 같았다. 1955년경만 해도 춘천 서울 간을 오가는 경춘선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극소수였다는 뜻이다. 그 전동차마저, 하루에 두 번 정도 아침저녁으로 느릿느릿 오갔을 뿐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시속 30km?

이 기억에서 또 한 가지를 깨달아야 한다. 지금의 교대부설국교 바로 앞 동네에서 전동차가 지나가는 남춘천까지, 시야를 가로막는 사물이라고는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집 한 채 없이 너른 벌판()과 하천(공지천 상류?)뿐이었다.

당시 교대부설국교는 죽림동 성당 아래에 있었고 2년 뒤 부모님이 그 먼 학교로 나를 입학시키는 바람에 어린 나이에 10리는 될 거리를 가방 메고 걸어 다니느라 참 힘들었다.

 

21살 무렵(1971년경)에 나는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학생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강원대학교 부근에는 외지에서 온, 자취나 하숙생들이 많았다. 나는 툭하면 친구 하숙방에 놀러가곤 했다.

하숙방에서 얘기 나누다 보면 밤이 되었고 그러면 밤바람 쐬러 그 동네 산봉우리에 올랐다. 말이 산봉우리이지 작은 야산의 꼭대기에 불과했다. 지금의 병무청 뒷산 꼭대기다. 해발 150m(춘천의 진산 봉의산이 해발 300m쯤 된다.) 될 그곳에 서 있노라면 갑자기 서치라이트처럼 강한 불빛 한 줄기가 우리를 엄습했다가 사라져버리곤 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경춘선 기차의 전조등 불빛이었다. 그 불빛이 남춘천 부근에서부터 병무청 뒤 야산 위까지 오는 동안 중간에 가로막는 건물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어릴 때와 달리 너른 벌판에 집들이 들어섰지만 나지막한 단층집들뿐이었으니.

물론 기차는 이미 전동차가 아닌 긴 열차로 바뀌어 있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경춘선이 복선 전철화 된 지도 10년이다.

며칠 전 강대병원에 갔다가 귀가하던 길에 퍼뜩 내가 지금, 오래 전의 그 야산 꼭대기 부근을 차 몰고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도로 변 공터에 세웠다. 느닷없는 감회에 차 운전 하기가 어려웠다.

보도에 서서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온통 원룸 건물들 빽빽한 주택가로 변해서 과연 내가 그 옛날의 야산 꼭대기쯤에 와있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밤바람에 흩날리던 야산의 잡초들 대신 시멘트와 아스팔트뿐. 4차선 차도에, 생맥주 집에, 카페에, 세탁소에, 노래방에.

이젠 고층건물들에 가려 남춘천 쪽은 보이지도 않았다.

세월 무상, 인생무상이었다.


사진= 80년대 남춘천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