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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퇴고가 100M달리기라면 장편소설 퇴고는 마라톤이지.”
내가 아내한테 무심결에 한 말이다.
나는 요즈음 지난 8월 중순에 일단 마무리한 장편소설의 초고를 퇴고하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200자 원고지로 1000매 분량이라 퇴고하는 일도 여간 고된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소설 속 등장인물의 어떤 특이행동을 퇴고하면서 일부 고친다고 하자. 구체적으로는 ‘젊잖게 살아온 사람으로 설정됐던 K가 어느 날 갑자기 포악한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소설내용을 일부 수정한다고 치자. 단편소설이라면 작가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0자 원고지로 100매 이내의 내용들을 점검해서 K가 그런 행동을 보이게끔 복선을 새로 마련해주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장편소설이 되니 작가로서 점검해야 할 내용이 1000매나 돼 여간 힘들고 고된 게 아닌 것이다. 1000매 되는 분량을 일일이 살펴서 K가 그런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하게 된 복선을 새롭게 만들어줘야 하므로.
그러니, 바로 눈앞의 목표를 보며 냅다 달리는 100M달리기와 달리 ‘주위의 풍경과 바람을 느껴가며, 체력의 안배까지 해 가며 천천히 달려가는 마라톤’ 같더라는 사실이다.
마라톤.
100리 넘는 먼 거리를 뛰는 일이다. 눈앞의 목표만 생각해서는 결코 뛸 수 없다. 뛰는 도중 주변의 풍경도 보고 부는 바람도 몸으로 느껴가며 천천히 뛰는 일이다.
마라톤 코스로는 우리 춘천의 코스가 일품이지 않나?
푸른 호수 변을 따라 돌면서 거대한 수석(壽石) 같은 삼악산, 봉긋하게 솟아 있는 봉의산…을 보며 뛰는 그 기나긴 과정. 비록 몸은 고될지언정 마음은 여유롭기 짝이 없을 것 같다.
아내가, 내가 무심결에 말한 “단편소설 퇴고가 100M달리기라면 장편소설 퇴고는 마라톤이지.”를 듣고는 이리 호응했다.
“당신 말을 들으니 장편소설 쓰는 일이 어떤 건지 가슴에 확 와 닿네!”
자, 나는 오늘도 마라톤을 뛰려한다. 몸은 비록 고달플지언정 마음은 여유로우며 주변의 풍경과 바람이 기다리고 있기에.
*사진출처= 달리기협동조합 http://jirunn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