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국어국문과를 나왔으면 서울 어느 학교에서 국어교사를 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산 첩첩한 삼막골에서 금속공예를 하다뇨? 어떻게 된 겁니까?”

내 직설적인 질문에 사내가 답했다.

물론 처음에는 서울 강남의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지요. 그러다가 3년 만에 사표 내고 나왔습니다. ‘학급 담임을 몇 년 만 맡으면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한다, 그 이상한 분위기에 도저히 적응을 못하겠더라고요.”

그 때부터 금속공예에 매달린 겁니까?”

아니죠. 다른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또 다른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하다 보니 어느 새 저도 모르게 금속공예를 하고 있더라고요 하하하.”

이 세상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 살려고 해도 발목을 잡는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특히 먹고 사는 문제의 어려움. 그런 어려움에 개의치 않고 산 첩첩 삼막골에 살면서 금속공예하며 사는 사내다.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건 사내의 다음 말이다.

저 폐교가, 제가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3년 간 다녔던 초등학교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요?!”

제가 다닐 때에는 저 아래, 지금은 수몰된 자리에 있었지요. 소양댐이 지어지면서 흐르던 강이 소양호가 되자 학교가 여기로 올라온 게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폐교가 된 자신의 어릴 적 초교(상평초등학교 청평 분교) 지붕을 내려다보며 사는 삼막골 사내. 무덤덤하게 그런 말을 하는 사내 앞에서 나는 갖가지 기억들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버렸다. 1964년에 나는 춘중 1학년 학생이었다. 그 해 가을 이 부근 청평사로 소풍 왔었다. 소양댐이 지어지기 전이라 강물이 흘렀다. 강변 비포장도로로 완행버스 타고 소풍 왔었다.

 

 

상평초등학교 청평 분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