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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대문 따위를 두지 않고 그냥 농사를 지었다. ‘대문 따위’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보기 좋은 숲속 풍경에 괜히 대문 같은 걸 만들어 달아서는 안 되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끔씩 외지인들이 불쑥 농장으로 들어와 두리번거리다 가는 일들이 생겨나면서 우리 부부의 생각이 달라졌다. 밭의 작물이야 옥수수와 배추 정도라 큰 걱정이 안 되지만 문제는 프라이버시 침해였다. 마치 우리 부부가 외지인들의 구경거리라도 된 듯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 춘심산촌에 대문을 달자.’는 결심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그렇다고 주택가처럼 대문을 달 수는 없었다. 대문을 달려면 먼저 밭 둘레에 담부터 둘러야 하는데 800평 밭 주위를 그리 한다면 소요되는 경비도 만만치 않을 테고 보기에 따라서는 우리 부부가 담에 갇혀 지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간수는 죄수를 지킨다지만 생각에 따라서는 같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모습일 수 있다’는,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이 떠올랐다.
대문을 걸 일이 아니라면 대체물을 생각해봐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봄 현재의 차단봉이 우리 춘신산촌 농장 입구에 설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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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어떤 모양의 차단봉을 설치할지 판단이 안 섰다. 주위 분들한테 조언을 구했다. ‘주택이 아닌 농장 입구에 설치하는 차단봉’이라는 우리 설명에 그분들은 한결같이 ‘입산금지’ 용 차단봉을 권했다. 그런 물건을 파는 곳을 수소문해서 찾아가 실제 눈으로 보니 세상에, 교도소나 군부대 입구에 놓는 삼엄한 형태였다. 그것을 춘심산촌 입구에 놓는다면 당장 부근에서 농사짓는 분들한테서‘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 참으로 농장 입구에 놓는 차단봉 하나 정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생각 끝에 쇠파이프를 취급하는 공장을 찾아갔다. 쇠파이프만으로 이뤄진 현재의 차단봉 형태가 내 머릿속에서 구상을 거쳐 종이에 그려진 직후다. 정확하게 그 길이까지 자로 재서 적었으므로 공장 직원이 긴 철봉 하나를 골라, 두 토막을 낸 뒤 종이에 그려놓은 형태대로 용접함으로써 마침내 차단봉이 완성됐다. 그 때 공장 사장이 말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실어가려우?”
우리 차는 산타페다. 뒷문을 열어 차단봉을 싣고 가려 했으나 공간이 좁아 차단봉의 반 이상이 밖으로 삐져나왔다. 그대로는 운반하기 어려워보였다. 사장이 이어서 말했다.
“손님들이 항상 그래요. 구상한 물건을 만드는 데만 신경 쓰느라고 막상 만들고 난 뒤에 그것을 실어 나르는 단계에서는 당황한다니까요.”
우리 부부 역시 그 말에 당황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럼 어떡해야 하나요?”
“용달차라도 불러야죠.”
난감해진 남편 대신 눈치 빠른 아내가 웃으며 나섰다.
“사장님. 담뱃값을 드릴 테니까 여기 트럭으로 실어다 주시면 안 되나요? 우리 농장이 멀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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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춘심산촌 입구에 들어선 ∩자 모양의 차단봉. 아내가 은빛 페인트까지 바르자 단번에 아름답게 빛나는 시설물이 되었다. 그 후 불시에 외부인이 춘심산촌 농장에 들어와 두리번거리다 나가는 일이 사라졌다. 그 부분은 마음이 편해졌는데 다만 부근에서 농사짓는 분들한테는 조금 미안한 감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소통을 막는다는 뜻의 ‘차단봉’이라는 삭막한 이름 때문인 듯싶다. 그렇다면 다른 좋은 이름이 어디 없을까? 정 없으면 ‘정낭’이라 할까?
*‘정낭’은 제주도에서 대문 역할을 하는 설치물이다. 집 입구의 양쪽에 구멍 뚫은 돌을 세우고 사이에 나무를 가로로 걸쳐놓은 것이다. 얼마나 단순한 형태인지, 집을 지킨다기보다는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달라는 뜻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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