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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에 아폴로 싸롱이 있었다.
춘천에서 못 보던 얼굴이었다. 서울 쪽 청년이 아니었을까? 먼 훗날 TV 드라마‘겨울연가’의 배용준처럼 고급털목도리를 둘렀고 공지천에서 스케이트 타다 온 건지 스케이트 갑(匣)도 그 끈이 한쪽 어깨에 걸려 있었다.
아폴로 싸롱 지하공간에 그가 나타난 것은 72년 겨울, 어느 날이다. 당시 겨울에는 공지천이 꽁꽁 얼어서 춘천은 물론이고 서울 쪽의 사람들까지 와 스케이트를 타다가 돌아가곤 했다. 대개, 상류층 젊은이들인 듯 보기 드문 자가용차까지 몰고 와 그렇듯 겨울 낭만을 즐기던 것이다.
어둑한 지하공간에서 별나게 하얀 그의 얼굴은 그가 춘천 사람이 아닌, 서울 사람이라는 걸 직감하게 했다. 그런데 그 날 낮에 공지천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초저녁에 나타나 벽 옆 빈자리에 혼자 앉아 밤늦도록 음악을 듣고 있었다. 우리는 못 보던 얼굴의 서울 청년이 그런 모습으로 같은 공간에 있어서, 처음에는 괜히 긴장해 있다가 (촌스럽지만 일종의 텃세 심리가 아니었을까?) 서서히 긴장이 풀려가고 있었다. 그 때 기타 소리 전주에 이어 ‘가야 할 사람이기에’ 하며 장현의 ‘석양’이 흘러나왔다.
“가야 할 사람이기에 안녕,
안녕이라고 말해야지
돌아설 사람이기에 안녕,
안녕이라고 말해야지
울먹이는 마음일랑 나 혼자 삭이면서
웃으며 말해야지 안녕 안녕…
가야할 사람이기에 안녕,
안녕이라고 말해야지.”
이어서‘라라라라라’하는 합창반주가 흘러나왔다. 그 청년의 숙인 어깨가 들먹이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다. 그는 소리 죽여 흐느꼈다. 마치 장현의 ‘석양’ 노래를 오열의 기점으로 삼은 둣이 말이다. ‘석양’은 대중가요치고는 매우 길다. 5분은 넘는다. 5분 넘는 석양이 끝나고 다른 가수의 노래가 이어졌는데도 그의 숨죽인 오열은 그칠 줄 몰랐다.
무슨 사연일까?
그러다가 우리(나와 친구 녀석)는 지하공간을 나왔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멋대가리 없는 우리였던가. 혼자 낯선 춘천의 어느 지하공간에서 흐느끼고 있는 그 청년에게 우리가 다가가 옆의 빈자리에 말없이 앉아주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을 텐데… 그저 통금에 걸릴까 봐 그 공간을 나와 버렸으니 말이다.
그 시대는, 청춘의 낭만까지 자제시켰던 통금의 시대였다고 하면 변명이 될까?
내 젊은 날에 아폴로 싸롱이 있었다.
이 수필에 나오는 아폴로 싸롱은 70년대 춘천 시내 한복판에 있었던 음악다방의 이름입니다. 당시 젊은이들이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서 종일 팝송과 송창식 같은 우리나라 젊은 가수들의 노래를 감상했습니다. 흡연은 허락됐지만 음주는 허락되지 않았던 나름의 멋진 음악 감상실이었습니다. ‘싸롱’이란 이름 때문에 요즈음의 젊은이들에게 오해 살 수 있어서 뒤늦게 무심이 밝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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